성경연구

성경맥잡기학교 - 신약 21강

관리자 0 5,929 2018.12.17 12:07
제21강 복음서를 알면 성경의 맥이 보인다 18(마 11-2)

예수님의 영원한 초대를 다룬다.
1. 구원은 오직 기적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로(20-24)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를 갈망하였다. 이제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임을 분명히 밝히셨다. 마 11장은 오신 메시야를 영접하지 않는 자들과 영접하는 자들의 두 부류가 있음과 이들에 대해 각각 심판과 축복이 있을 것임을 증거한다. 주님은 많은 기적을 베풀어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선포하셨음에도 자신을 영접하지 않은 고라신과 벳새다, 가버나움에 대해서 저주하신다.  20-23절. 이들 마을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구원받지 못했다. 지금 이곳들은 유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가버나움에 3-4세기 무렵에 있었던 회당과 돌기둥, 베드로의 집터가 있다.
  구원은 병고치고, 귀신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이 피 흘리고 고난 받는 것, 오직 대속의 십자가 외에는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다른 방법이 없음을 말씀하신다.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이다. 16-17절은 악의에 찬 불신앙의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들은 무감각하고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 자들이다. 장터에서 결혼식 놀이와 장례식 놀이를 해도 반응이 없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다.
  18-19절은 예수님을 나쁘게 비판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요, 탐식가요 술꾼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우리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슴이 뜨거워 주님과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천국을 보는 사람(11:25-27)

  주님은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아니라 어린아이들, 어리석어 보이고 연약한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성령님이 도우신 것을 아버지께 감사했다. 마음이 가난한 영혼, 심령이 때묻지 않은 어린아이 같은 영혼이 천국을 볼 수 있다. 고전 1:26-29,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어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임을 말씀하신다. 27절,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도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요 14:6, 9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내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님을 본 자는 곧 아버지 하나님을 본 것이다. 예수님은 곧 하나님과 하나이시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27)

3. 영원한 안식에로의 초대(11:28-30)

  그리고 고난 받으신 후 주실 성령님을 통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야를 영접한 성도가 누릴 축복(영원한 안식)에 대해 말씀하신다. 28-30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28절)
  많은 그리스도인이 대단히 좋아하면서도 실제로 쉼을 누리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수고한다’는 말은 사서 고생을 하는 능동적인 고생을 말한다. 자신이 잘못했거나 죄를 지어서 하는 고생이 아니라 스스로 고생을 만든 것이다. 또 ‘무거운 짐’은 피동적인 고생이다. 원치 않는 환경 속에서 수난을 당하는 그런 고생이다. 그렇다. 인간은 스스로 고난을 취하든, 원치 않는 고난을 받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존재이다. 누구든지 다 고생하며 산다. 남몰래 눈물과 아픔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많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은 죄인된 인생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런 존재임을 잘 아신다. 그래서 절망하는 우리들을 두 팔을 벌리시고 누구든 내게로 오라. 그리하면 참된 안식을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께로 오는 일이다.” 그리고 예수님(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편히 쉬게 하는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절대적인 초청이요, 놀라운 약속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29-30절). 여기서 멍에가 무엇인가? 두 마리 짐승이 따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함께 목에 메고 나이든 숙련된 짐승이 젊고 미숙한 짐승을 이끌며 배우게 하는 도구이다. 함께 멍에를 진 어리고 훈련되지 않은 나귀나 말이나 소는 무거운 짐을 지는 고통을 참아내며 숙달된 선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서 조금씩 기술을 배워 나간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말씀은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선악과’를 먹지 말고,  ‘생명과’인 말씀을 먹으며 예수님 곁에 딱 붙어서 제자훈련을 받으라는 말씀이다. 자기 생각과 판단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법을 배우라고 하신다. 멍에를 지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고, 내 뜻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내 생각을 버리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멍에를 멜 때 영원한 안식을 주신다. 이 축복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길 바란다.

과제 : 요한계시록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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