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성경맥잡기학교 - 신약 20강

관리자 0 5,660 2018.12.10 18:27
성경맥잡기학교 - 신약 20강

제20강 복음서를 알면 성경의 맥이 보인다 17(마 11)

세례 요한의 주님에 대한 오해와 예수님의 영원한 초대를 다룬다.

1. 오실 그이가 당신이십니까?-세례 요한의 의심(2-19)

  세례 요한은 왕의 잘못을 고발하다가 감옥에 갇힌다. 고생하던 그는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물어본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2,3) 예수님은 "내가 메시야다"라고 대답하지 않으신다. 다만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무엇을 듣고 보았는가? 귀신이 쫓겨나고 병든 자가 낫고, 눈 먼 자가 보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한센씨 병자가 깨끗해진 것을 보았다.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나사렛 회당에서 언급하셨던 이사야의 예언(사 61:1-3) 대로이다. 선지자들의 예언이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세례요한에게 전하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메시야로 오셨음을 증거하셨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 대해서도 선지자들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증거하셨다. 마 11:10, "기록된바 보라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엘리야의 심정으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 곧 오리라 한 엘리야가 바로 세례 요한이라는 말씀이다. 말 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 대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 보다 더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마 11:11)"고 하신다. 왜 세례 요한이 여인이 낳은 자 둥에 가장 큰 자가 됩니까? 세례 요한은 구약의 약속대로 이 땅에 오신 메시야를 직접 가리키면서 증거한 유일한 선지자 였다. 그리고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어 하나님이 주신 구약의 모든 약속을 인계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천국에서 가장 낮은 자라고 하시는가? 세례 요한은 오실 메시야를 증거하는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 땅에 오실 성령님의 역사로 내면의 변화(천국)를 체험하지는 못하고 죽었기 때문이다. 그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 간주된다(11:13-14).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라는 것을 알았다. 요 1: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하지만 그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가 이해한 것은 큰 영광과 권능으로 오셔서 이 땅을 회복하고 심판하시는 메시야였다. 로마지배에서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하지 않고, 옥에 갇힌 자신을 꺼내 주지도 않는 예수님에 대해 의아한 심정을 가졌을 것이다.
  요한이 전한 것은 “예수님이 심판하실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눅 3:9) 자신은 구세주를 심판주로 이해했는 데 예수님은 거지, 세리, 창기처럼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들과 어울려 다니며 불쌍한 사람들과 함께 굶고 우셨다. 예수님은 심판주로서의 권위를 보이지 않으셨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옥에서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11:3) 하고 질문했던 것이다.

  초림의 예수는 낮은 자로 오셨다. 낮은 자로 오셔서 보이지 않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세례 요한은 이 사랑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서 자신이 예언한 심판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서 가장 낮은 자”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2. 구원은 오직 기적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로(20-24)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증거했다. 예수님 자신도 자신이 메시야임을 분명히 밝히셨다. 마 11장은 오신 메시야를 영접하지 않는 자들과 영접하는 자들의 두 부류가 있음과 이들에 대해 각각 심판과 축복이 있을 것임을 증거한다. 주님은 많은 기적을 베풀어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선포하셨음에도 자신을 영접하지 않은 고라신과 벳새다, 가버나움에 대해서 저주하신다.  20-23절. 이들 마을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구원받지 못했다. 지금 이곳들은 유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가버나움에 3-4세기 무렵에 있었던 회당과 돌기둥, 베드로의 집터가 있다.
구원은 병고치고, 귀신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이 피 흘리고 고난 받는 것, 오직 대속의 십자가 외에는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다른 방법이 없음을 보고 한탄하셨다.

3. 영원한 안식에로의 초대(11:25-30)

  주님은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아니라 어리석고 연약한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성령님이 도우신 것을 아버지께 감사했다. 그리고 고난 받으신 후 주실 성령님을 통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야를 영접한 성도가 누릴 축복(영원한 안식)에 대해 말씀하셨다. 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28절) 많은 그리스도인이 대단히 좋아하면서도 실제로 쉼을 누리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29-30절). 여기서 멍에가 무엇인가? 두 마리 짐승이 따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함께 목에 메고 나이든 숙련된 짐승이 젊고 미숙한 짐승을 이끌며 배우게 하는 도구이다. 함께 멍에를 진 어리고 훈련되지 않은 나귀나 말이나 소는 무거운 짐을 지는 고통을 참아내며 숙달된 선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서 조금씩 기술을 배워 나간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말씀은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선악과’를 먹지 말고,  ‘생명과’인 말씀을 먹으며 예수님 곁에 딱 붙어서 제자훈련을 받으라는 말씀이다. 자기 생각과 판단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법을 배우라고 하신다. 멍에를 지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고, 내 뜻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내 생각을 버리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멍에를 멜 때 영원한 안식을 주신다. 이 축복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길 바란다.

과제 : 요한일. 이. 삼서. 유다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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