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성경맥잡기학교 구약 21강

관리자 0 5,554 2017.12.11 12:19
성경맥잡기학교 구약 21강

제21강 광야시대를 알면 성경의 맥이 보인다 3 (민 13-36장)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데스 바네아에서 시험하신다. 12 명의 정탐꾼을 보내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그들은 시험에 실패했다. 그래서 믿음 없는(불신) 1세대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며 죽어야 했다. 하나님은 불신 1세대 대신에 신앙 2세대로 가나안 땅을 향하게 하였다.

1. 가나안 정탐과 실패(민 13-14장) -메뚜기냐 밥이냐?

  1) 10 명의 실패자와 따르는 백성들
  가나안 땅을 40 일간 정탐하고 돌아온 각 지파의 대표 12 명 중 10 명은 부정적인 증언을 했다. “과연 그곳에 가보니 젖과 꿀이 흐르는 당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네피림(*거인족)의 후손인 아낙자손이 있는데 어마어마한 거구여서 그 앞에서 우리는 메뚜기 같았습니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 보다 강하니라.”(13:31).
  그런데 정탐꾼 중 여호수아(에브라임지파)와 갈렙(유다지파) 두 명은 달랐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14:7-9)
  이때 백성들은 다수를 따라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하였다.
  여러분, 10 명의 정탐꾼들이 왜 실패했느냐? 눈에 보이는 현상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믿음이 없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Now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실현될 것과 우리가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존재하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영어 번역을 보면 더 분명하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분명히 이루어질 것과,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확실하다고 하는 것이 믿음이다. 보이는 현상만 보고, 보이지 않는 실상을 보지 못하는 것은 불신이다. 보이는 것에 눌리지 않고 보이는 것에 쫒기지 않는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실상은 말씀이다. 보이지 않는 말씀은 결국 현상으로 나타난다. 말씀은 보이지 않지만 말씀의 운동력을 따라서 반드시 현상으로 나타난다(히 4:12). 믿는 자는 보이지 않는 실상을 믿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
  *아람 군대가 선지자 엘리사를 잡으려고 엘리사의 집을 포위했다. 엘리사의 집은 산언덕 위에 있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아침에 세수하러 나갔다가 보니, 아람 군대가 새까맣게 깔려 있었다. “아이고, 큰 일 났습니다.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기도한다. “저 종의 영안을 열어주소서.” 그때 종의 영안이 열렸다. 불 말과 불 병거가 엘리사의 집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살아계신 주님을 믿는 자는 눈에 보이는 현상을 보고도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의 문제는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사랑이 없다는 뜻이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나니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느니라.”(요일 4:18)  예수님께 사로잡힌 자는 두려움이 없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아서 어디를 가도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사랑이 있으면 절대로 두렵지 않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하나님의 사랑이 절절히 느껴진다(요일 4:19).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라. 불구덩이 속에서 엄청난 고문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말씀을 전할 수 있었겠나? 바로 믿음 때문이다. 그들은 천국을 봤기 때문에 앞에 있는 지옥 같은 현실에서도 주님이 함께 하심을 고백할 수 있었다. 스데반은 돌을 맞아 고통스러우면서도 일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보좌 앞에 계신 주님을 보았다. 이것이 믿음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10 명의 정탐꾼처럼 낙심할 때가 많다. 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가? 기도하지 않아서이다. 성령님의 인도르 따라 기도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뜨겁게 느낄 수 있다.

 2) 하나님은 믿음 없는 자를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 없음을 보시고 하루를 1 년으로 계산하여 40 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게 하신다. 이 40 년은 출애굽 당시 20 세 이상이었던 믿음 없는 성인 1세대들이 죽어가는 기간이다. 믿음 없이 현실에 굴복했던 자들, 10 명의 정탐꾼들의 말을 듣고 울고불고했던 사람들은 다 죽어갔다. 이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신앙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레만은 들어갈 수 있었다. 믿음 있는 자만에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의 원칙은 다수결이 아니다. 하나님은 믿음 없는 다수의 손을 들어주지 않으신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4). 믿음 있는 창조적인 소수(Creative Minority)가 중요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38 년 동안 가데스 바네아 근처를 맴돌았다. 참담한 광야 생활이었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성막을 짓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던 백성들이 아닌가? 어떻게 광야 생활 내내 하나님을 원망하고 배역하였을까? 믿음 없는 출애굽 세대들이 다 죽고 나서 민족의 지도자가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교체되고 이스라엘의 모습도 달라진다.
2. 모세의 범죄(민 20장)
  지도자 모세도 하나님께 범죄한다. 백성들이 신 광야 주변을 38 년간 빙빙 돌때 이들은 참담했다. 하나님은 때마다 기적을 베풀어주셨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물이 떨어졌다고 불평한다. 기적을 체험했다고 믿음이 충천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20:18)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모세는 “내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랴” 하면서 화를 내었다. 반석을 두 번이나 쳤다. 이는 모세가 스스로 물을 낼 수 있다고 교만이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범죄했다고 말씀하신다. 결국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40 년간 모세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책임을 맡기셨다. 그런데 단 한 번 불순종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갈 특권을 박탈당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가셨다. 모세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하나님을 원망하고 배역하는 백성들을 이끌고 신실하게 약속의 땅을 향하여 나아간다. 모세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주님은 “이 세상에서 모세만큼 온유한 자가 없다”(민 12:3)고 말씀하신다. 모세처럼 온유하고 중보기도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호흡 주시는 순간까지 다하겠다.’ 모세의 참된 지도력을 배우자.

3. 불신1세대에서 신앙 2세대로 세대교체
 1) 호르마의 불뱀 사건(21장)
  광야 생활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있다.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당신이 무슨 지도자라고 우리를 여기로 끌고 와서 사망 한가운데서 죽에 하는가?” 모세는 앞이 캄캄했다. 이때 하나님이 광야 가운데서 불뱀을 보내어 믿음 없이 하나님을 원망한 사람들을 불뱀이 물게 하셨다. 백성들이 고쳐달라고 애원했다. 모세는 하나님께 중보기도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놋뱀을 만들어 나무에 매달라고 명령하신다. 모세가 매단 놋뱀을 쳐다보는 자는 다 구원받고 살아난다.
  왜 하필 뱀을 만들게 하셨을까? 출애굽 후 계속 배역하는 백성들이 목이 곧은 코브라와 같다는 것이다. 코브라는 목을 쭉 빼고, 아래로 눈을 깔고 보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목이 곧은 자는 불뱀에 물리고서 하나님의 구원을 본다는 것이다. 놋뱀을 나무에 단 것은 나를 십자가에 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예표이다(요 3:14).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바라보는 자는 살아난다!
  병들었을 때, 사업에 실패하고, 절망에 빠질 때에 주님 앞에 나오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사람은 자신이 연약할 때 십자가를 바라본다. 이때 이렇게 기도하자. “주여, 나의 육이 깨어져서 주님을 만날 수 있게 하소서.”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제 주님만 의지합니다.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저를 도와주시고 저를 축복해 주세요.” 육은 죽고 영이 사는 것은 진짜 축복이다. 하지만 “하나님, 왜 이렇게 아프게 하십니까? 실패하게 하십니까? 좌절하게 하십니까?” 따지는 사람은 목이 곧은 코브라 같은 사람이다. 이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2) 요단 동편 정복(21, 31장)과 분배(32장)  발락과 발람(22-24장)  *23:19-23

4. 신명기 : 하나님과 우상, 축복과 저주의 길, 40년 광야 생활의 회고-오직 주님의 은    혜, 감사. 인간은 끊임없이 배반하나 하나님은 용서와 은혜와 사랑 주심, 신실하심 

*과제 : 수 1-12장 정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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