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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9:1-18, 고통 속의 구원

관리자 0 1,325 2021.03.28 08:56
롬 9:1-18,  고통 속의 구원

  이제 9장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을 말씀한다.

1. 바울의 근심은 무엇인가?(1-5)

근심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은 자신의 생명을 다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면서도 항상 동족인 이스라엘인의 구원에 대하여 마음에 큰 부담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1.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3.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1) 동족을 향한 바울의 근심 – 출 32:32, 모세의 기도 묵상하라.

  바울은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유대인들이 알기를 원했다. 100% 죄인인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의롭게 되었지만, 여전히 욕심과 거짓, 음란 등 끊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탄식하시면서 성도를 이끌어 가시기에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구원의 찬양으로 롬 8장을 마쳤다. 이것이 1-8장의 내용이다. 이 과정을 모르면 바울의 마음에 큰 근심과 고통을 이해하기 어렵다. 바울의 근심은 자기 근심이나 육체적인 근심이 아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야망의 고통도 아니다.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질지라도 간절히 원할 만큼 목숨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은 것이 바로 자신의 혈육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인정하고 믿는 일이다. 바울은 끊을 수 없는 사랑과 승리에 대한 확신을 내 가족의 구원을 위해 주신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8장의 사랑의 확신이 9장의 사명으로 연결된다.

 2) 유대인이 잃어버린 특권들은 무엇인가? 4-5,
4.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① 양자됨(출 4:22,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로 부름받았다)  ② 영광(출 29:42-45) : 영광스러운 구름으로 하나님이 성막과 성전 가운데 거하셨다.  ③ 언약들(창 12:1-3, 15장, 출 24:8, 삼하23:5) : 아브라함에게 조건없이 언약을 맺으셨다. 다윗에게 무조건적인 언약을 주셨다.
 ④ 율법(신4:8) : 율법 통해 구원받을 자격이 없음을 알고 하나님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게 됨  ➄ 예배(히9:1-5) : 성전에서 드리는 눈으로 볼수 있는 예배 의식, 구속사적 의의  ➅ 약속들(창3:14-19, 시2:2-7 등) :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언약, 전체 인류의 구속을 목표로 하는 언약들  ➆ 조상들 : 메시야의 예표들, 요셉 모세 여호수아 다윗 등  ➇ 육신으로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심(9:5)
*질문 : 아직 구원받지 못한 가족이나 이웃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마음, 근심의 마음이 있습니까?  *나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6-18)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거나 불완전한 승리를 하지 않으시며, 하나님의 온전하심처럼 그 행사도 역시 완전한 주권을 이루신다. 하나님의 주권이란 온 세상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와 의이다.

 1) 육신의 자녀와 약속의 자녀(6-11)-구속자적인 구분, 참 이스라엘은 누구인가?
 6.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존재론적 아닌 구속사적 구분이다. 이삭과 야곱은 약속의 자녀로 미리 예정 선택하셨다.

 2) 사람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12-15)
    12-15, 12.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갈 수 없는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계획되고 결정된다. 주님은 야곱을 복주시기로 선택하셨다. “에서는 미워하셨다”(말1:3)는 감정적 미움이 아니라, “에서 아닌 야곱을 더 좋아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선택하셨다. 

3) 능동적인 하나님, 수동적인 사람(16-18)-구원에 대한 입장
16-18, 16.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바로는 10번이나 발악한다. 마음이 걍퍅하고 완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 결국 버림을 받게 된다. 갸롯 유다도 동일하다. 주님이 계속 사랑하시지만 결국 배신, 자살.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은 전적으로 능동적이고, 인간은 전적으로 수동적이다. 구원은 근원부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하나님만큼이나 완벽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구원의 위대함과 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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