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예배/새벽예배

목요일예배-마 17장-2, 왕의 영광

관리자 0 1,895 2019.12.08 01:53
목요일예배-마 17장-2, 왕의 영광          17:1-8                          (목성연 교재 참조)


1. 영광의 왕으로 변모하심(1-13)
 1) 3사람만 데리고 가심 1절
 2)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1절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에 변화되셨다.(눅 9:29)

예수님은 구속 사업을 앞두고 하나님과 의논하고 싶어 하셨다. 영광을 뵙기 위해서 공적인 자리는 피하셨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은 때때로 사람들과 떨어진 곳을 찾아야 한다. 변화되기 위하여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나는 것 뿐 아니라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즉 그들은 그들의 심령을 들어올려 '위엣 것을 찾아야'(골 3:1)한다.(메튜헨리)

3)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예수님이 변형되심 2-3절
율법과 예언을 중심으로 하는 이스라엘 종교에 있어서 이 두 사람은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율법과 예언은 구약의 두 틀이다. 하나님 섬기는 법, 사랑하는 법을 설명해 주실 때 주님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는 표현을 쓰셨다(마 22:40).

이 두 사람의 출현은 예수님이 이들이 대망하던 ‘메시아’ 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며 전 구약이 예언했던 바로 그 메시아 왕국을 실현하실 분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증거하는 메시지가 된다.

4) “너희는그의 말을 들으라” 4-5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 ”
베드로는 일시적인 흥분에 사로잡혀 영원히 그 속에서 살고 싶음을 말했다.
당시에 아랍인들은 존귀한 자가 왔을 때 존경과 예의를 표하기 위하여 장막을 쳐주곤 했다 한다(왕하 4:9-10). 베드로는 초막을 짓겠다고 말함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예절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베드로의 말은 하늘의 개입으로 즉각 무시되었다.

“여기에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많은 사람들이 어떤 특별한 영적인 경험을 가지면 그 자리에 머물려고 한다. 또 그 사건이 사역과 삶의 중심이 되기를 원한다. 더욱 전진된 상태를 기대하지 않고 늘 그 사건을 축으로 모든 사역의 원칙을 삼는다.

그러나 지금 산 밑에서는 9제자가 귀신들려 간질병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한 아들을 도우려다 낭패를 당하고 있다. 아무리 좋아도 거기 머물면 안 된다. 계속 성장하고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②  베드로는 율법과 선지자를 복음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모세와 엘리야는 주인되시는 예수님을 예표하고, 예언하는 종의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다. 동일한 예우는 합당치 못한 일이다.

율법과 선지자는 완성될 복음을 위해서 존재한다.

② 베드로는 늘 서두르고 충동적으로 응답함으로 실수가 많았다. “너는 말하지 말고 아들에게 들으라”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말하지 않고 주께 듣는 법을 훈련받아야 한다.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라야....”(마 7:23-24) 불법을 행하지 않으려면 늘 말씀을 듣고, 그 분의 뜻이 무엇인지 들어야 한다.

 율범과 예언의 대표는 사라지고 예수만 남았다. 17: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하나님의 뜻은 율법과 예언을 성취하시는 예수에게서 모세와 엘리야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Q :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와 덛불어 예수님의 신적 주권과 광채를 볼 수 있었다. 그곳에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 이 변모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나요?(마 16:28)
  A : 수난, 승리, 영광으로 이어지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의 결과를 보여준다. 이 변모는 예수님의 승리와 장차 다가올 왕국의 영광을 미리 보여준다. 이는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재림을 말한다(16:28). 베드로는 이 사건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실 때 보여줄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보았다고 간증한다(벧후 1:16-18).

 적용 질문

  1.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이 재림에 대해 미리 보여준 영광의 사건이었지만, 제자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베드로는 순간적인 감정에 이끌려 이곳에 초막 셋을 짓자는 성급한 발언을 한다. 구속사가 아닌 자신들의 이기적인 위로와 기쁨에 마음을 빼앗겼다. 나는 늘 주의 나라와 의를, 하나님을 먼저 구하고 있나? 아니면 출세, 성공, 물질, 욕망, 건강, 명예, 스펙과 같은 것들에 마음을 집중시키고 있나?

2. 모세와 엘리야는 율법과 예언의 대표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종에 불과하다. 두 종과 주인을 나란히 세우는 일은 매우 무례한 일이다. 혹 예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과 대접, 칭찬을 내가 가로챈 적은 없는가? 주인을 모시는 종이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가?

3. 우리는 듣기 보다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주의 음성을 듣고자 집중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내 자녀, 배우자, 이웃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며 사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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