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요일 2:1-6, 앎과 순종으로 한 해를 보내자!

관리자 0 17 01.04 09:48

요일 2:1-6, 앎과 순종으로 한 해를 보내자! 

 

들어가는 말/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압니다.”

하지만 성경은 한 걸음 더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안다면, 그 앎은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

요일 2:1–6에서 사도 요한은 신앙을 단순히 머리나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입술로 고백하는 문제가 아니라 몸으로 순종하는 문제로 우리를 이끕니다.

 

1. 우리의 대언자와 화목제물, 예수 그리스도 (1–2)

요한은 먼저 매우 현실적인 말로 시작합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은 성도들이 죄를 지을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신앙이 있다고 해서 실수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거룩을 추구한다고 해서 넘어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요한은 동시에 분명히 말합니다.
“절망하지 말라.”
왜냐하면 우리에게는????대언자, 곧 변호사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변명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자기 몸으로 죄 값을 지불하신 분이십니다.

2절은 말합니다.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예수님은 친히 화목제물이 되셔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된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이 은혜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자신의 몸을 화목제물로 나의 죄값으로 지불하신 은혜가 먼저이고, 우리의 순종은 그 은혜에 대한 반응입니다.

*질문/ 죄를 지었을 때 자책감에 빠져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지는 않나요?

답: 본문 1절은 우리에게 '대언자(변호인)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을 상기시킵니다. 죄는 미워하되, 우리를 변호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신뢰하며 즉시 회개하고 다시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2. 앎의 증거는 순종입니다 (3–4)

이제 요한은 아주 분명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성경에서 말하는 “안다”(히브리어-야다, 헬라어-기노스코)는 개념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닙니다. 머리 지식, 이성의 지식으로 아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적 사고, 성경에서 “앎”은????관계적이고 경험적인 앎입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와 경험으로 아는 것, 예수님을 인격적인 관계와 경험으로 아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불을 “안다”는 것은 ‘불’의 의미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뜨거움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3중고(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의 고난을 안고 살았던 헬렌 켈러는 어린 시절 병으로, 설리번 선생님의 도움으로 언어를 배우고 성장해 작가, 교육자, 사회운동가로 활동했죠. 그가 언어를 배울 때의 일입니다. 헬렌 켈러에게 ‘물’이라는 단어를 가르친 유명한 일화가 있어요. 어린 헬렌은 앞도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아 사물과 말의 관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저 감정대로 행동해서 주변 사람들도 많이 힘들어했죠. 그러던 어느 날,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을 데리고 우물가로 갔어요. 한 손에는 헬렌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차가운 물을 손 위에 흘려보내며 헬렌의 손바닥에 계속 이렇게 철자를 썼어요.

W-A-T-E-R. 처음엔 헬렌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물의 느낌과 손바닥에 쓰이는 글자가 딱 연결되는 순간, 헬렌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고 해요. 그 순간 헬렌은 “아, 이 느낌을 ‘물’이라고 부르는구나!” 하고 세상에 이름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거예요. 그날 이후 헬렌은 흥분해서 땅, 나무, 컵 등 만지는 것마다 이름을 알려 달라고 했고, 하루 만에 수십 개의 단어를 배웠다고 해요. 스스로 경험하게 해서 언어를 익히게 한 것입니다. 

요한은 말합니다. “그를 안다 하면서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이 말은 매우 날카롭습니다. 신앙 고백과 삶의 방향이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고 안다면, 그분의 말씀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지 않고 그분의 계명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고 요한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욕망이 앞선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젊은 피아니스트가 토스카니니 앞에서 연주를 마친 뒤 거만하게 물었습니다. "마에스트로(지휘자), 제가 이 곡을 얼마나 잘 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토스카니니는 차갑게 대답했습니다. "자네는 악보에 적힌 '음표'들은 다 외웠을지 모르지만, 그 속에 담긴 '작곡가의 마음'은 전혀 연주하지 못했네. 정말 곡을 안다면 그렇게 자기 멋대로 연주할 수 없지."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성경 구절을 외우고 교리를 공부해서 '음표'는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계명)을 따라 삶으로 연주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직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앎은 작곡가이신 하나님의 의도대로 우리의 삶을 연주해내는 '순종'에서 시작됩니다.

 

3. 주님처럼 행하는 삶(5–6)

요한은 마지막으로 순종의 목적을 보여줍니다.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말씀을 지키는 것, 순종은 하나님께 점수를 따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그 안에 산다”는 고백은 매우 영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것을 매우 구체적인 삶의 방향으로 연결합니다.????"그 안에 산다"고 고백하는 자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보여주신 그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걷는 삶,????예수님의 태도, 선택, 사랑의 방식. 우리가 완벽하게 예수님과 같을 수는 없지만, 방향은 같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신 것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미워하신 것을 멀리하며, 예수님이 순종하신 것처럼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삶입니다. 순종은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입니다.

 

맺는말/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일 2장 1–6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은혜 위에 서 있는가?

나의 “하나님을 안다”는 고백은 삶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오늘 나의 선택과 태도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는가?

순종은 신앙의 조건이 아니라,????신앙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은혜로 시작해, 사랑으로 자라며, 삶으로 증명됩니다.

새해도 우리의 앎의 고백이 삶의 순종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참된 앎과 순종의 삶을 사는 복된 새해 되시길 축복합니다. 

 

[합심 기도 제목]

1)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손발로 이어지는 신앙을 주소서"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안다'고 자부하면서 정작 삶에서는 내 고집대로 살았던 위선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성경 지식이 머리에만 머무는 '관념적 신앙'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떨림으로 받들어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살아있는 순종'의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2) "나의 대언자 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며 다시 일어서게 하소서"

연약하여 죄에 넘어질 때마다 사탄의 정죄감에 빠져 하나님을 피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의 화목 제물이자 완벽한 변호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고, 그분의 십자가 은혜에 힘입어 다시 거룩한 삶을 향해 일어설 수 있는 담대함을 허락하옵소서.

3) "내 삶의 연주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해지게 하소서"

새해 한 해 동안 가정과 일터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대로' 행하기를 원합니다. 비난하고 싶은 순간에 용서의 음표를, 교만하고 싶은 순간에 겸손의 선율을 연주하게 하옵소서. 나의 작은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 속에서 아름답게 증명되게 하옵소서.

 

[결단 기도문]

"나의 대언자 되시는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이제는 내 고집을 버리고 주님이 행하신 대로 삶의 현장에서 순종의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을 체험하는 자임을 증명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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