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6:11-15;18:21-35, 이렇게 기도하라 4(용서)
오늘은 주님의 기도 중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에 대한 말씀을 듣습니다.
1.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11)
이 기도는 우리의 영혼이 건강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경건한 성도라도 매일 죄를 짓는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죄 용서를 받아야 한다. 우리가 날마다 육신을 위해서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고, 영혼을 위해 일용할 용서가 필요하다. 주님은 목욕한 자녀가 날마다 발을 씻는 것에 비유해서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땅은 먼지가 많았고 그들은 샌들을 신고 다녔다. 매일 발을 씻었다. 우리 성도는 예수님의 보혈로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 하지만 매일 짓는 죄를 주께 용서받아야 한다. 그래서 매일 죄 용서를 구하라고 말씀하신다. 롬 3: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죄’는 원래 ‘빚’이다. 그래서 이 기도는 ‘하나님, 우리가 형제의 빚진 것을 탕감해 주듯이, 우리의 진 빚도 탕감해 주옵소서’라는 뜻이다. 사실 이 기도는 우리를 힘들게 만든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라면 쉽다. 나아가 14-15절에서 강조하신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어떻게 이웃을 용서할 수 있나?
2. 하나님이 우리를 조건없이 먼저 용서하셨음을 알라.
우리 모두 조건없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 당연하다.
마 18장에 좋은 예가 있다. 예수님이 형제의 죄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즉 무한정으로 용서해 주라고 교훈하셨다. 이어서 용서를 모르는(unmerciful,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하셨다.
어떤 종이 임금에게 일 만 달란트라는 엄청난 빚을 졌다. 어느 정도 일까? 6천만 데나리온, 즉 남자 장년이 20만 년 일해야 하는 돈이다. 평생 벌 수도 없는 엄청난 돈이다. 왕은 이 종을 불러 처자와 소유를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했다. 이 말을 들은 종은 제발 살려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때 임금님은 종을 불러 불쌍히 여기면서 일만 달란트 전부를 탕감해주었다. 얼마나 큰 용서를 받은 것인가? 감격스런 일이다. 아마 백 번도 더 절하면서 감사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 종이 엄청난 은혜를 입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났다. 백 데나리온은 1만 달란트의 60만 분의 일이다. 자신이 탕감받은 것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것이다. 그런데 이 종은 자기에게 빚진 동료를 만나자마자 다그치기 시작했다. 빚진 동료는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애걸했다. 하지만 그는 그 빚진 동료를 감옥에 가두어버렸다. 주위 사람들이 그의 행위를 괘씸하게 여기고 왕에게 고발했다. 왕이 일만 달란트 빚졌던 종을 불러 크게 꾸짖는다. 18:32,33 말씀이다.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이 종은 너무나 큰 빚을 왕으로부터 탕감받았다. 이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60만분의 1인,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다루어서야 되겠는가? 하나님 앞에 큰 은혜를 입은 우리가 반드시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의무요, 도리이다. 그런데 이 같은 의무를 행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그 사람을 옥에 집어넣었으니 얼마나 악한 사람인가? 예수님은 결론을 말씀하신다. 35절이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3. 용서하며 살아서 용서의 기쁨을 누리며 삽시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의 은총을 받아 누리고 사시기를 원하십니까? 남을 진심으로 용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용서는 그리 쉽지 않다. 용서하려면 십자가의 아픔이 있다. 예수님이 본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셨다. 살이 찢기고 피흘리고 가시 면류관을 쓰는 처절한 아픔과 고통을 경험하게 하셨다. 우리도 그렇다. 남을 용서하려면 참으로 큰 괴로움을 겪는다. 마음에 아픔이 있다. 내 살이 찢어지고 내 피를 흘리는 그런 고통이 있다. 마음의 번뇌가 있고 갈등이 있다. 나의 미운 감정과 자존심과 분노를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는 아픔과 고통을 극복해야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다. 얼마나 힘든 일이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기쁨과 승리와 행복을 느끼게 된다.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아무런 죄도 실수도 허물도 없으시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셨다. 그 고통을 감당하셨다. 자신을 조롱하고 침 뱉고 저주하는 사람들을 용서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의 한없는 고통을 참고 이기면서, 자신을 고통속에 죽게 만드는 원수 같은 사람들을 다 용서하셨다. 용서하는 사람에게 이런 고통이 있다. 이런 고통을 동반할 때 진실된 용서라 할 수 있다. 단순히 말로써 ‘너를 용서한다’로 되지 않는다. 진실로 용서하는 데는 마음에 굉장한 아픔이 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에서 얼마나 힘드십니까? 원망스런 사람, 미운 사람, 만나거나 보기도 싫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을 용서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말로만이 아니라 자신의 살을 찢는 아픔을 느끼면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용서하십시다.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이는 평범한 기도가 아니다. 쉬운 기도가 아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시는 말씀이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돌아가신 예수님의 부탁을 경청하며 따르기로 결단합시다. 나는 주님의 엄청난 용서를 받은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이다. “주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용서받은 기쁨을 가지고 이웃을 용서하게 하옵소서. 이 일이 십자가를 지는 고통과 아픔이라 하더라도 지고 갈 수 있게 하옵소서. 거기에 주님의 뜻이 있고, 주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거기에 주님의 놀라운 은총이 있습니다.”
여기에 에밀 브란트라는 30 대 주부의 글이 있다.
그녀는 복잡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어머니로부터 구박을 많이 받았다. 자라면서 늘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증오심은 나이가 들수록 이글이글 타오르는 숯불처럼 점점 강해지기만 했다. 어머니가 자기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위가 뒤틀리고 두통이 생길 정도였다. 사자 굴에 떨어지는 다니엘처럼 긴장했다. 모녀 사이에 얼마나 증오심이 심했는지 알만하다. 그는 고민 끝에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목사님의 권유에 따라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무척 노력을 했다. 하루는 성경 말씀을 통해 자신이 어머니를 용서하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깨달은 바가 있어서 어머니를 용서해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달라질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