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왕하 7:3-20 절망 중에도 복음을 전하라

관리자 0 4,760 2019.07.15 13:02

왕하 7:3-20 절망 중에도 복음을 전하라

 

절망에 빠진 사람들,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다(3-4). 

들은 공동체에서 추방된 부정한 자들이다. 도시는 적군 아람 군대에 포위되었다. 이제 그들은 먹을 것이 없다. 그들에게 세 가지 선택의 길이 있다. 1) 포기 - 가만히 있다가 죽는다. 2) 성 안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죽는다. 3) 아람 군대에 항복한다-죽거나 산다(50%).

그들은 아람 군대에 항복하기로 하고, 아람 진영으로 들어간다(5). 이는 목숨 건 행동이다. 그런데 그곳에 군대는 보이지 않고, 남긴 물건과 나귀만 있었다. 절망에 빠진 그들의 목숨 건 결단으로 그들은 복음(생명을 얻게 됨)을 만난다. 그들은 실컷 먹고 마셨다. 그리고 그들은 이 아름다운 소식을 왕궁에 가서 알리기로 결심한다(9). 그들은 가서 성 문지기를 불러 전한다(10). 결국 왕궁에 전달된다. 그리하여 온 백성들도 절망에서 벗어나 희망을 갖고 생명을 얻는다.

 

인류는 죄로 말미암아 절망에 빠진 자들이다. 믿음으로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희망을 갖자. 십자가는 최대의 절망이다. 하지만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인류가 구원을 얻게 되었다. 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자. 예수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딤후 4:2(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

 

1. 절망 중에도 살 길은 있다(3,4). 아람 군대는 목숨 걸고 도망갔다. 하나님은 나병환자들에게 살 길을 남겨 두었다. 그들은 세 가지 선택의 길 중 세 번째를 선택했다. 바로 그들이 사는 길이다. 하나님은 아무리 우리가 절망 중에 빠지더라도 살 길을 남겨두신다.

 

2. 능력의 하나님은 절망 중의 도움이시다(46:1). 기적의 하나님이시다(6,7).

도대체 어떻게 해서 아람 군대가 그 많은 물건들과 양식들을 다 두고 사람들만 달아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아주 간단한 능력이었다.

 

6-7, “6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7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하나님은 아무도 상상치 못한 음향효과를 사용하셨다. 갑자기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 소리를 나게 하셨다. 어두워지는 황혼의 때, 어두운 밤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병거와 큰 군대의 소리와 말 소리가 들려왔다. 아람 군대는 이스라엘의 용병인, 헷족 왕들과 군대, 애굽의 왕들과 군대가 쳐들어온 줄 착각했다. 그들은 정신이 없어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몸만 빠져나와 죽자 살자 도망을 쳤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지혜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운 절망적인 상태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면 살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실제로 군대를 동원하지 아니하시고 특별한 방법으로 아람 군대를 망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라는 전혀 뜻밖의 방법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

 

나병환자들의 보고를 받은 이스라엘의 여호람 왕은 아람 군대의 도망 소식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들을 성 밖으로 유인해서 성을 빼앗으려는 유인술로 생각했다. 그때 왕의 신복 중 하나가 왕에게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건의했다. 즉 이왕 가만히 있어도 굶어죽게 될 텐데 죽을 각오를 하고 몇 사람을 보내서 확인해 보자는 것이었다.

13, “그의 신하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청하건대 아직 성중에 남아 있는 말 다섯 마리를 취하고 사람을 보내 정탐하게 하소서 그것들이 성중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멸망한 이스라엘 온 무리와 같으니이다 하고.”

아람군대는 헛 소리(병거, , 큰 군대 소리)를 듣고 도망했다. *모압군대 : 물을 피로 보고 치다가 패배(왕하 3:20-27),

결국 나병환자들은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고, 그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된다. 능력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좌절 속에 오셔서 도우신다. 해답은 나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 내 능력으로 사는가? 위기의 상황에 위로부터의 능력을 의지하는가?

*출애굽 홍해 앞의 이스라엘의 절망, 그들과 모세를 비교하라. 하나님의 도우심은?

 

3. 절망 중 복음을 전하라. 이웃을 살리라(9-10).

9,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 마라톤의 기원.

올림픽의 꽃은 마라톤입니다. 마라톤은 기원전 490년 아테네와 페르시아 간에 벌어진 마라톤 전쟁에서 유래되었다. 아테네 북쪽에서 약 42.195 km 떨어진 마라톤 벌판에 상륙한 페르시아군을 상대로 예상을 초월한 대승을 거둔 그리스군은 이 승전보(victory news)를 알리기 위해 한 사람을 보냈다. 그 사자(messenger)는 죽을 힘을 다해 아테네에 이르러 승전보를 알리고 쓰러진 후 숨을 거두었다. 비록 그 사자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쁜 소식을 알리려는 불타는 사명감에서 나온 그의 영웅적인 행동은 마라톤 경기를 통해 지금까지도 널리 기려지고 있다. 또 이것은 증인된 성도의 귀감(precious example)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 권세를 이겼다는 승전보를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네 명의 나병환자의 뉘우침을 통해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부여된 주의 사자,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

 

잠잠해서는 안 된다. 침묵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성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근과 고통으로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평상시 성민들의 도움으로 살아간 나병환자들이 고의적으로 침묵하고 기쁜 소식을 숨긴다면 이것은 심각한 죄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이웃의 죽음을 방관한다면 이웃을 죽인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자로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잠잠하여 우리의 이웃이 여전히 죽어가고 있다면, 누구에게 그 책임이 돌아가겠습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10:17) 하신다. 그들의 믿음 없음은 먼저 믿은 우리가 그들에게 들음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 책임이 아니겠는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면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게 된다. 이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적용질문(목성연 교재를 참조하세요)

 

1. 성문 어귀에 머물며 나병에 걸려서 장래 희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그들이 굶어 죽을 위기에 놓이게 되자 아람 군이 주둔하고 있는 진중으로 들어가서 항복하자. 만약 그들이 죽이면 죽고 살려주면 살자하며 아람 군대가 있는 성으로 들어갈 용기를 낸다.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해결해 나갈 길을 신앙에서 찾지 않고 자포자기를 먼저 선택한다. 당신이라면 어떻습니까? 죽을 생각을 먼저 합니까? 기도로, 신앙으로 죽기 살기로 도전해보자는 생각을 먼저 합니까?

 

2. 나병환자였기 때문에 그들은 무모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의 절망, 고통도 하나님의 구속사를 위해 쓸 수 있다. 고난도, 축복도 부담도 다 사명과 연결시켜야 된다. 나의 지난 세월의 고난이, 나의 광야 생활이 구속사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죽어가는 영혼들에 대한 안타까움, 당신이 가진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가 있습니까? 기쁜 소식을 전한 사람들은 죽음의 냄새가 나는 사람들이었다. 보잘 것 없고 격리당하고 숨어다니는 사람들, 너무나 초라한 사람들이었다. 복음의 능력은 당신이 아닌, 그리스도로부터 나온다. 용기가 필요할 때는 크게 선포하세요. “고난은 사명이다. 축복도 사명이다. 부담은 사명이다.”

 

3. 모압 사람들에게는 헛것을 보게 하여(물이 피로 보이는) 전쟁에 패배하도록 하시더니, 아람 군대들에게는 헛소리가 들리게 하여 전쟁에 패배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죽으려고 했던 나병환자들이 오히려 그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고 복음을 전하는 자로 바뀌게 된다. 능력은 위로부터 온다. 나에게서 모든 해답이 나오지 않음을 인정하십니까? 나는 내 능력만큼만 사는 사람입니까? 위기의 상황에서도 위로부터의 능력을 끌어다가 쓸 줄 아는 사람인가?(6,7)

  

결론

 

우리는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믿음으로 우리를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 구원, 영생, 기쁨과 평안, 능력을 소유하고 누린다. 이 복음, 이 영생과 구원의 기쁜 소식(3:16)을 우리 혼자만 갖고 있으면 안 된다. 가족이나 이웃에게 전해야 한다. 성안에는 복음을 듣지 못한 백성들이 죽어가고 있다. 아직 예수님을 믿지 못해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 가족이나 이웃이 있다. 복음의 증인으로 땅끝까지 품고 기도하며 전해야 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자.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기에 우리가 얻은 기쁨, 평안, 능력이 감소되는 화를 당하게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면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게 된다. 이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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