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십계명학교 - 제7계명

관리자 0 4,584 2019.09.30 11:59
십계명학교 - 제7계명

출 20:14(신 5:18; 마 5:27-30)  간음하지 말라 : (로 티네아프)

    인간은 두 가지 중요한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식욕과 성욕입니다. 인간은 먹고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천하장사라 하더라도 먹어야 합니다. 아무리 날씬한 사람도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거식증 환자도 전혀 먹지 않고는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먹는 것을 절제하지 못하면 인간은 너무 추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이 식물과 동물을 먹고 살도록 하신 것은 인간의 생명을 보존하게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많은 것들이 하나님의 의도와 달라졌습니다. 생명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시키는 것이 많습니다. 술과 담배, 과식이나 탐식은 인간의 생명을 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몸을 건강하게 하는 음식 습관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성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을 아름답게 하고 가정을 기름지게 하며 삶의 조화를 이루도록 합니다. 그런데, 성을 충동적이고 본능적으로 사용하여 가정과 개인을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성을 즐기고 그것을 통하여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창조 질서에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제한적인 것입니다. 창 2:18은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아담에게 하와는 돕는 배필로서 그에게는 한없는 기쁨과 감격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을 누리는 것은 창조의 질서를 따라야 합니다. 창 2:24은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한 남자에 한 여자 일부일처가 하나님의 창조 원리라는 것입니다. 말 2:14-15에서도 강조하십니다. “…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찌기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하도다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그런데, 라멕은 창 4장에서 최초의 일부다처제의 창시자로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깨고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한 결과입니다. 육체의 본능과 육신의 쾌락을 위하여 일부다처제로 바뀌에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욕망의 산물이며 죄악된 모습입니다. 어떤 성도는 주장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나 손자 야곱, 이스라엘의 성군 다윗과 지혜의 왕 솔로몬도 일부다처제로 살았으니 우리도 성경대로 일부다처제로 살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악입니다. 하나님이 당시 잘못된 관습 속에 빠진 그들을 용서하셨을 뿐입니다.  그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선용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정당화시켜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제7계명에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간음하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창조 질서에 따라 한 몸된 부부 이외의 모든 행동에 관련됩니다.
마 5:27-30에서 말씀하십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주님은 여기서 세 가지 사실을 교훈하십니다.
 1.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간음하였다고 선포하십니다. 자신의 배우자 아닌 남에 대하여 순결을 지킬 것을 요구하십니다. 여기서 “음욕을 품는다”는 것은 새가 둥지를 틀고 산다는 뜻과 마찬가지입니다. 새가 우리 머리 위로 날라 지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새가 내 머리에 둥지를 치고 살게 해서는 안됩니다. 마귀는 우리 마음에 더러운 생각들을 집어넣곤 합니다. 우리는 물리쳐야 합니다. 악하고 추한 생각들이 우리 마음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치고 살게 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남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도 이미 간음한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행동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닙니다. 영혼에게 미칠 결과를 생각해야 합니다. 잠언은 말씀합니다. “사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됨, 인간 됨됨이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에게 간음하지 말라는 교훈을 이웃에 대한 순결을 지킬 것으로 해석하십니다. 욥 31:1-2에 욥의 자세를 본받아야 합니다. “내가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요셉은 자신을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에게 담대하게 말합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2. 자기 자신에 대하여 순결을 지킬 것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은 아주 엄격하게 선언하십니다.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내버리라” “또한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일하니라.” 이것은 영혼을 불결하게 하지 않기 위하여 불결한 육신을 없애버리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영혼과 마음의 순결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시는 것입니다. 또 이를 위하여는 고통과 아픔, 인내와 절제가 필요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가정의 순결을 요구하십니다. 가정을 파괴하는 것은 간음입니다. 그러므로, 간음하지 말라는 이 7계명은 자신과 남의 가정과 결혼의 신성함을 지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 현대는 Science(과학), Sports(스포츠), Sex(성)의 3 S 시대입니다. 이들을 선용하면 우리의 삶에 큰 공헌을 하지만, 오용하면 인간과 사회를 붕괴됩니다. 특히 성의 숭배가 온 세계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간음하지 말지니라’ 주님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결혼과 가정을 신성하게 여기십니다.

1. 간음이란 무엇입니까?

  히브리인들은 간음(나아프)을 “기혼자(약혼자 포함)가 자기의 남편이나 아내 이외의 이성과 맺는 불법적인 성관계”로 이해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성범죄, 즉 강간, 남색, 수음(수간), 근친상간, 동성연애, 매음 행위, 혼전 성관계 등 일체의 성의 남용, 오용 또는 악용과 관계되는 모든 유형의 성행위를 포함합니다. 성경은 육적인 간음뿐만 아니라 영적인 간음(하나님 이외의 우상에게 마음이 미혹되어 신앙의 순결을 저버리는 것)도 경고하고 있습니다. 렘3:8-9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다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약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마 5:28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 성적 대상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싶어하는 마음 속의 계획 *음행은 주로 미혼자의 성범죄를 말한다.   

2. 간음을 금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간음은 자신(육신과 영혼)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잠 6:32), “음행을 피하라 …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몸 속에)죄를 범하느니라”(고전 6:18). 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순결한 영혼이 범죄하면 눈빛을 잃습니다. 호세아 4장 11절은 “음행은 … 마음을 빼앗느니라”고 하십니다. 잠언 6장 26절은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고 경고하십니다.
인생은 ‘마음 빼앗기 전쟁’입니다. 잠언 4장 23절은 교훈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구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구원을 얻는 것은 마음을 잘 지켜 예수 그리스도에게 고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삶에서 악한 생각과 죄악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2) 가정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3장 4절은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 4절은 “하나님의 뜻은…너희의 거룩함이니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고 선언하십니다. 히브리인은 결혼을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한 구별, 성별의 개념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3) 사회를 파괴시키기 때문입니다.
  ‘간음죄는 개인 범죄가 아니라 사회적 범죄입니다.’ 예를들면 다윗 왕의 간음죄는 다윗과 밧세바 두 사람의 상처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 고통이 찾아옵니다. 아들 간에 살인극이 벌어집니다. 재앙으로 많은 백성이 죽게 되기도 합니다. 즉,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나아가 사회까지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이 간음죄인 것입니다. 간음죄, 성적인 타락으로 인하여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했습니다. 폼페이(로마)의 멸망도 음행과 음란과 간음 때문입니다.

  4) 무서운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9절은 말씀합니다.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구약시대에 간음죄는 사형에 처해졌습니다(레 20:10; 신 22:22). 요한계시록 21장 8절은 간음하는 자와 우상숭배자는 둘째 사망(불과 유황 못)에 참여한다고 말씀합니다. 후천성 면역결핍증인 AIDS는 바로 이런 저주의 결과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한 크리스챤은 정욕의 범죄가 끓어오를 때마다 자기 자신을 향하여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정욕의 불이 뜨거울 때마다, 내 영혼이여! 지옥의 불을 기억하라!” 마태복음 5장 29-30절은 온 몸이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범죄하는 일부분이 없는 것이 더 낫다고 하면서 범죄하는 신체의 일부를 잘라버리라고 엄하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3. 그러나 성은 축복된 것입니다.

  성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을 선용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성은 깨끗하고 아름답고 귀한 것입니다. 인간의 몸은 하나님의 전(殿)입니다. 성도의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聖殿), 거룩한 집입니다.
이범에서 영지주의의 이원론은 잘못입니다. 그들은 “영혼은 완전히 깨끗하고 거룩하나, 육체는 더럽고 악한 것이므로 성은 무조건 더럽고 잘못된 것이다”고 잘못된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육체를 죄악시하지 않습니다. 이 육체를 하나님께 거룩히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4. 간음죄(유혹)를 이기는 길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임재를 지각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간교하게 우리를 유혹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아. 남들로 다 그러는 데 뭐.”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동자가 나를 주목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잠언 16장 6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욥기 31장 4절은 “그가 내 길을 감찰하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고 하십니다. 신명기 11장 12절은 “…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고 선언하십니다.

  2) 피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 22절은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간음죄는 싸워야 할 죄가 아니라 피해야 할 죄인 것입니다. 잠언 6장 27-29절은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야 어찌 그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야 어찌 그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무릇 그를 만지기만 하는 자도 죄 없게 되지 아니하리라”고 경고하십니다. 욥기 31장 1-2절에서 욥은 결단합니다.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의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에서 전능자의 주시는 산업이 무엇이겠느냐?” 

  요셉의 경우를 묵상하십시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해왔습니다. 당시 애굽 사회는 성적으로 극도로 문란하고 타락했습니다. 창세기 39장 9절은 위대한 선언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셉은 옷을 찢고 도망했습니다. 도망은 성의 유혹과 성 범죄에서 벗어나는 최대의 비결입니다. “걸음아! 날 살려라”하면서 줄행랑을 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유혹을 피함으로써 감옥을 들어가는 고생을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순결을 지켰습니다. 또한 보디발의 가정도 지켜 주었던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어느 날 길거리를 가던 중 방탕하던 젊은 시절에 알았던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가 여인을 피하자 여인이 자꾸 그를 따라오면서 외쳤습니다. “나예요, 나!” 그러자 어거스틴은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너는 너지만, 나는 내가 아니다.” 이제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는 길을 재촉하여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우리가 유혹에서 승리하는 길은 피하고 여호와 앞에 있다는 신앙 교육과 주의 말씀으로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3) 부부는 사랑의 띠를 더욱 굳게 해야 합니다. 

  창세기 2장 24절은 결혼이 남녀의 결합이라고 말씀합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신의 결합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정신적인 결합, 영적이고 신앙적인 결합도 포함합니다. 즉 전인적인 결합을 의미합니다. 결혼의 실제적인 이유 중 하나는 음행을 피하기 위함입니다(고전 7:2). 부부는 서로 성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3)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적으로는 우리는 주님에 대한 사랑의 띠를 굳게 해야 합니다. 성도는 주님의 정결한 신부이기 때문입니다(고후 11:2).

  4) 부도덕한 가치 기준을 거부해야 합니다.
 
    한국의 마케팅 전략 연구소가 한국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고했습니다(1992-1998년 7년간 조사). 이 보고에 따르면, 성에 대하여 개방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98년의 조사에 의하면, “사랑하는 사이라면 결혼 전에 성관계를 갖는 것도 무방하다”고 답한 사람이 40대가 44.5%, 20대가 53.9%, 30대가 58.4%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이 통계는 ’96년의 통계보다는 다소 낮아진 것입니다. ’96년에는 40대가 51.5%, 20대가 55.4%, 30대가 62.1%나 되었습니다. 어떻든 절반 이상이 성에 대하여 개방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결혼 전의 성관계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약혼자들이 성적 관계를 가지는 것은 어떻습니까? 성경은 결혼한 사람들만이 동침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출 16, 17, 22장; 신 22:29). 하나님은 어떤 남자가 다른 사람의 아내나 약혼녀와 동침하면 더 무거운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여자가 다른 사람의 남편이나 약혼자와 동침하면 무서운 벌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약혼자들도 동침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혼전 성관계는 이 세대의 풍조이며 죄악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흘러가는 한 순간의 반짝이는 쾌락보다 영원한 진리를 붙잡도록 우리의 마음이 주님 앞에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미션 스쿨 학생들이 혼전순결서약을 하고 성결하게 살려고 다짐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실험 결혼의 사상도 이 세상의 죄악된 모습입니다. 

5) 말씀과 기도로 채워야 합니다(딤전4:5; 시 119:9,11, 51:10).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과 관련됩니다. 거룩한 생활은 말씀과 기도라는 두 수레바퀴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없이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바울 선생은 거룩한 생활을 위하여 “혼인을 금하라 식물을 피하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합니다.딤전 4:5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이 시편 기자의 기도처럼 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말씀을 채우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나를 지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6) 하나님께 몸을 드려야 합니다(롬 6:12,13; 12:1; 고전 6:19-20).

    고전 6:19-20은 말씀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피 값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께서 이 죄 때문에 그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를 이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죄와 싸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자서 간음죄의 유혹과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7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결혼하지 않은 자들에게 정절을 지키도록 가르치십니다. 결혼한 자들에게는 배우자와 함께 순결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몸을 청결한 처녀로 한 남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드릴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고후 11:1-2) .

이제 결론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온 세상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순간 우리의 모든 죄가 십자가 아래에서 속량되었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 1:18).
 주님은 용서의 주님이십니다. 간음 중 잡혀 온 여인을 생각해 보십시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예수님의 말씀에 한 사람 한 사람씩 물러갑니다. 모두 물러간 후 주님께서 조용히 긍휼에 찬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지금 이 시간 동일한 주님의 음성이 우리의 귀에 들려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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