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십계명학교 - 제4계명

관리자 0 4,452 2019.08.26 12:00
십계명학교 - 제4계명

세계적인 거부 록펠러는 세 가지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선의 기록입니다. 그는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남을 위해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둘째는 인생 역전의 기록입니다. 그는 매우 가난했습니다. 첫 여인에게 ‘가능성이 없는 가난뱅이’로 몰려 버림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비방을 자극제로 삼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재벌로 우뚝 섰습니다. 셋째는 ‘장수의 기록’입니다. 록펠러는 98 세까지 장수를 누렸습니다. 눈을 감을 때까지 치아와 위장은 여전히 건강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3 대 기적을 이룬 원동력은 세 가지 입니다. 첫째는 감사의 마음입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남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주일 성수와 경건한 생활입니다. 그는 한번도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평생동안 주일을 성수했으며,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했습니다. 셋째는 성경 묵상입니다. 아흔 살이 넘어 시력이 약해지자 그는 사람을 고용해 성경을 읽게 했습니다. 귀로 성경을 들으며 마음의 평화를 유지했습니다.(‘선행’, ‘감사’가 장수를 선물합니다. ‘불평’과 ‘원망’은 뼈를 마르게 합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 4 가지 창조명령을 주셨습니다. 1. 안식일 명령 2. 노동명령 3. 결혼명령 4. 선악과명령입니다. 제4계명은 이 중 안식 명령과 노동명령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4계명, 안식일에 대한 명령은 3 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안식일을 기억하라 입니다.

물론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망각의 본능 때문에 주님을 잊고 살 때가 자주 있습니다. 프랑스의 역사가요, 정치가인 C. F. 몽다렘베르(Montalembert)는 말했습니다. “안식일이 없으면, 예배가 없을 것이요, 예배가 없으면 기독교가 없고, 기독교가 없으면 인간의 자유가 영원히 있을 수 없다.” 진실입니다. 또, E. 터너(Tuner)는 “한 주간을 시작하면서 안식일을 지키는 일을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한 주가 끝나기 전에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망각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8절은 말씀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라.” 안식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식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안식을 얻고 복을 받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후 안식하신 날입니다. 곧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전 12:1에서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가 안식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식을 베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출 33:14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마 11:28에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내게 너희를 쉬게 하리라” 사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리라 하시더라”


최초의 안식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6 일 동안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제6일이 끝나기 직전 황혼에 하나님의 마음에 있던 인간을 지으셨을 것입니다. 창조의 걸작품이요, 면류관이요 꽃입니다. 이어서 창조의 성업이 끝나고, 다음날 하나님은 안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제1일은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날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아름다운 세계 안에 거하여 하나님의 창조를 즐기며 안식하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하고 난 다음 쉴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쉬고 나서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첫 사람 아담 때부터 인간은 안식이라는 선물을 먼저 받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아담이 이 선물을 향유하던 최초 인간의 안식일은 얼마나 멋진 날이었겠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에덴 동산을 거닐며 교제하는 더할 수 없는 소중한 축복을 누렸을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복주신 날이며 인간이 이를 기억함으로 복받는 날입니다.
찬송가 42장(지난 이레 동안에)의 작시자 잔 뉴턴은 고백합니다. 1절에서 가장 복된 날로서 하늘의 안식의 표라고 합니다. 3절에서 기쁜 하늘 잔치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4절에서 주님 오시는 날까지 이 복된 날을 지키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자유와 휴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애굽에 10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모세를 인도자로 세워 백성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출애굽 사건은 백성들이 죽음의 고역에서 해방되고 자유를 얻은 날입니다. 신명기 5:15에 나오는 4계명에는 이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출애굽하게 하신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들은 가나안 땅, 천국을 바라보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곧 영원한 지옥에서 살아야 할 우리를 예수 믿고 영원히 구원받은 감격을 기억하라는 말씀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주님과 성령님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안식일이 주의 날, 주일로 바뀌게 됩니다. 일 주일의 첫 날 주일을 지키면서 주님을 기억함으로써 세상 살 동안 주님을 잊지 않도록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고전 11:24에 보면, 성찬의 가장 중요한 의미도 주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일은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주일에 제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주일에 승천하셨습니다. 또한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교회가 탄생한 날도 주일입니다.

넷째로, 성도들과 교제하는 날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의 날에 모여서 떡을 떼며 주님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서로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교제했습니다. 서로의 짐을 나누어졌습니다.

다섯째로, 주님께 감사하는 날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셨고,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 말할 수 없는 은사에 대하여 오직 감사하는 날이 주일입니다. 이 감사를 물질로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봉헌입니다. 

여섯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날입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특별히 주일은 온종일 예배와 성경공부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뜨겁게 받는 날입니다. 지중해 상에 밧모섬이 있습니다. 97년 여름에 터키와 그리스 성지순례를 가는 길에 밧모섬에도 들렀습니다. 그곳에는 사도 요한의 계시 동굴교회가 있습니다. 지하에 요한계시록 1장 내용을 연상할 수 있는 바위가 있습니다. 바위 주변에 요한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여기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가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런데, 이 계시를 받은 날이 바로 주의 날, 주일인 것입니다. 행 20:7에 보면, 사도 바울이 밤중까지 말씀을 계속 전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받은 날이 바로 주일입니다.

(이는 안식일이 어떤 날인가, 왜 지켜야 하는가 그 의미를 되돌아보면서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인생은 피곤한 존재입니다. 인생은 빨리 흘러갑니다. 봄인가 하면 가을이고, 청년의 때인가 하면 곧 백발의 노년이 됩니다. 전도서를 보면 솔로몬의 고백이 있습니다. 1:8에,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 피곤하고 지친 인생이 소생하는 길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교훈합니다. 전 12:1에서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사 40:28-31 “~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창조주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십니다. 피곤치 않습니다. 절대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온 우주의 힘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떨리는 무릎을 튼튼하게 해 주십니다. 안식일은 잔칫날입니다.)

2. 거룩하게 지키라

미국에서는 주일을 부르는 명칭이 지난 백 년 동안에 네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백년 전에는 ‘holy sabbath'(거룩한 안식일)이라고 불렀습니다. 약 60 년 전에는 ‘sabbath'(안식일)로 불리었고, 약 30 년 전에는 ’sunday'(일요일), 즉 달력의 명칭으로 불렀으며, 지금은 ‘weekend'(주말)로 불린다는 것입니다. 이 낱말의 변천은 미국인의 교회생활에 대한 변화를 그대로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주일’을 ‘주말’로 인식하는 생활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위로 솟아오르는 독수리의 신앙 원리에서 이탈하여 육체의 휴식 등 밑을 내려보며 피로를 해결하려는 잘못된 인식입니다.

본문 8절은 ‘안식일은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10절은 ‘여호와의 안식일’, 사 58:13은 ‘여호와의 거룩한 날’이라고 합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하나님을 위하여 어떤 것을 특별히 구별하여 지정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백성이었기 때문에 다른 민족들과는 달리 유일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들 중 거룩한 레위인들은 모든 유대인들 중에서 특별히 하나님의 성전을 섬기는 일을 맡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주일은 거룩한 날이기 때문에 한 주간 중에서 특별히 하나님을 섬기는 날로 정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모든 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6일 동안을 일상적인 업무로 분주합니다. 다른 날은 세상과 자신과 가족을 위하여 열심히 일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찬송하며 말씀을 읽고 묵상합니다. 하지만 주일은 하루 종일 다른 6 일과는 달리 구별되게 지켜야 합니다. 온전히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생각하며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날입니다.

찬송가 43장(즐겁게 안식할 날)의 작시자 워즈워드는 고백합니다. 1절-즐겁게 안식할 날 반갑고 좋은 날, 내맘을 편케하니 즐겁고 기쁜 날. 이 날에 천하만민 다 보좌 앞에서 참되신 삼위일체 거룩타 부르네.  * 원문에는 가장 아름답고 맑은 목소리로 천하만민이 영원한 보좌 앞에서 위대하신 삼위일체께 “거룩 거룩 거룩"의 찬송을 부른다”라 되어 있습니다. 3절-이 안식 지킴으로 새 은혜 입어서 영원히 쉬는 곳에 다 올라갑시다. 성부께 찬미하고 성자와 또 성령 참되신 삼위일체 찬송할지어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생명을 바치면서 지켜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생명을 걸고 지켜왔습니다. 주전 2 세기 경 마카비의 독립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적의 공격을 받아도 안식일에는 방어하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천 여명이 죽음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때도 아랍인들이 안식일에 공격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안식일이 끝난 시간 이집트를 공격하고 카이로 시를 포위하여 승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금요일 저녁 6시가 되면 안식일의 시작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립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도시는 정적과 고요로 바뀌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된 것은 그들이 철저히 안식일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지킴으로 그들은 민족혼과 삶을 계승시켜 나갔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주신 절대적인 명령을 철저히 지켰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을 지킵니다. 안식일의 정신과 의미는 그대로 계승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주일 성수 개념이 점점 약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주일을 안 지켜도 신앙생활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성도는 어떤 사람입니까? 주일을 성수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주일을 모든 날 가운데 최우선으로 지키는 사람은 나머지 6일동안도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을 대충 보내는 사람은 나머지 6일을 완전히 세속적으로 보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나의 일을 쉬는 것입니다. 단순히 놀고 쉬는 날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표현합니다. 진정한 휴식이나 안식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가능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목사로서 온종일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다 보면 피곤하여 월요일에는 늦게까지 자고 싶은 심정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일 성수했기 때문에 월요일 아침에 심한 피곤을 느낀다면 안식일을 잘못 지킨 것이라는 뜻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복받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3절은 “하나님이 일곱째날, 안식일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고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11절도 “~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고 명령하십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복 주신 날이므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복을 받는 것이고 안식을 누리는 것인 데, 왜 피곤해 하는 것입니까? 아마도 하나님을 위하여 지킨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하여 지키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가짐, 태도를 바로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격하는 자세로 주일을 성수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참 안식을 누릴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또 안식일에 쉬면 가난하게 되거나, 먹고살기가 힘들다고 생각하고서 주일에도 세상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부족한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마귀는 주일에도 우리를 공격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주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의식주 문제를 주께 맡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루를 쉬어도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충분히 채워주십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광야 40 년 동안 매일 그들에게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매일 한 사람 당 한 오멜씩 주셨습니다. 한 오멜은 2.4ℓ, 한  되 두 홉으로 한 사람의 하루 식량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날 거둔 것은 그날에 다 먹었습니다. 남겨 두었던 것은 모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에는 내리지 않았습니다(출 16:4,5,21-30). 안식일에 내려주시지 않는 대신 전 날에 두 배(이틀 분)를 내려주셨습니다.  안식일 전날 굽고 삶아서 잘 간수했습니다. 이것은 냄새도 안 나고 벌레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거두려 나갔다가 헛수고만 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을 신뢰하지 않다가 책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귀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 같은 우리 인생 길에 먹을 것을 포함한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매일 매순간 주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불신할 때는 책망을 받게 됩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만나를 거두려 갔던 사람들처럼 우리도 헛수고의 인생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6일간은 세상 만나를 먹으며 살지만, 주일은 하늘의 만나를 먹기 위하여 살아야 함을 교훈합니다.

예화 1) 구한말 평양은 제2의 예루살렘이라 불렸습니다. 주일이 되면 모든 상점들은 문을 닫습니다.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공부하며 이웃을 위하여 구제하며 주일을 성수했습니다. 당시 평양의 인구가 4 만 내지 5 만이었는 데, 교인수가 2만 3천명(50% 이상이 기독교인), 주일 성수를 하는 교인도 14000 명 이상이었습니다. 전 인구의 1/3 이상이 주일 성수했습니다. 그들은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 예루살렘교회 성도처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예화 2) 스티븐 지랏이라는 필라델피아의 백만장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자기 직원에게 주일 출근령을 내리고 선박의 짐을 부리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때 한 청년이 의연하게 걸어나와 주일에 일하는 것에 대해 재고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청년은 노모를 부양해야 할 절박한 처지였지만 주일만큼은 성수하고 싶다는 의지를 나타내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 도전을 받은 지랏 씨는 이 청년을 즉석에서 해고해 버렸습니다. 자신의 입장과 사업을 생각할 때 어쩔 수 없는 조치였는지는 모릅니다. 며칠 후 한 은행장이 새로 은행을 하나 열려 하는 데, 책임자로 적합한 사람이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지랏 씨에게 요청해 왔습니다. 이때 그는 자신이 해고한 그 청년을 추천하면서 은행장에게 이같이 말했습니다. “자기의 처한 생활을 신앙의 원리에 따라 저버릴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마음놓고 돈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겠소!” 결국 주일 성수를 목숨처럼 여긴 이 청년은 더 좋은 위치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어떤 장로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는 데, 주일이면 꼭 문을 닫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저 장로님의 곧 망할 것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가계는 점점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 건물 전체를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농촌교회도 많이 돕고 있습니다.  . 칠일만에 하루를 쉬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 영국 로열 아카데미의 연구-.프랑스 혁명 후 10 일만에 쉬도록 함 : 전 국가적으로 40 %의 결손을 보게 됨  . 소련 공산 혁명 후 레닌은 기독교를 말살하기 위하여 8 일만에 한 번 쉬게 함 : 일년 52 주 중 7-8 회만 주일과 겹침. 그러나 결과는 전 국가적으로 생산지수가 30 %나 떨어짐. 6 일만에 한 번 쉬도록 함 : 그래도 생산성이 떨어지고 말았다 : 결국 7일째 쉬는 것으로 환원하고 말았다. 우리 몸의 리듬은 6일간 일하고 하루는 쉬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시간을 보내게 될 때, 참된 휴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해야 합니다.

본문 9절은 말씀합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6 일간은 힘써, 즉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안식은 6 일간 주님이 주신 힘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게으르고 나태한 자는 안식할 자격이 없습니다. 엿새 동안 힘써 일한 자만이 참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청교도의 후예들은 하나님 주신 힘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하여, 미국은 세계 최대의 경제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인들은 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최대의 채무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나라는 1950년 6.25 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땀흘려 부지런히  일한 결과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 되기도 했습니다. 80 년대 말부터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여가에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국, 지금 경제적인 고생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노동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명령입니다. 에덴동산을 만드신 하나님은 인간에게 동산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창 2:15). ‘다스린다’는 말은 ‘경작한다’(till, cultivate)는 의미입니다. 작년에 성서공회에서 출판한 개역개정판은 ‘경작하다’로 옳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즉, 열심히 갈고 엎어서 일하는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하여 인간은 건강을 얻게 되고, 하나님이 은혜에 감사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학생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인은 직장에서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주일에 교회에서 사명을 다 감당해야 합니다. 찬송가 371장은 교훈합니다. 어두운 밤이 오기 전에 힘써 일해야 할 것입니다. 멜란히톤은 “게으름은 마귀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누가 지켜야 합니까?
  10절은 말씀합니다. ‘~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뿐만 아니라, 남편이나 아내, 자녀를 비롯한 모든 가족들, 학생들, 직원들, 일하는 모든 사람들도 다 안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안식일을 이렇게 지키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은 무엇입니까?

사 58:13-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1)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즉 영적인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2) 땅의 고지를 타고 다니게 됩니다. 높은 곳에 올리워진다, 즉 인생에 승리자가 됩니다.
3) 야곱의 유업에서 먹게 됩니다. 즉,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참 안식을 잃고 지쳐 있지는 않습니까? 어떻게 잃어버린 안식을 되찾겟습니까? 안식의 주인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독수리 같은 웅비하는 새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안식의 주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육체의 안식을 누리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여가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영원한 안식, 영혼의 안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짐을 지십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죄사함의 평안과 자유함을 얻은 영혼들에게 참된 안식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짐을 위탁하시고 그분의 임재 안에서 안식을 가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안식의 참된 주인이 되십니다. 안식의 샘터에서 생명수를 마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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