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을 떠나야 했던 이유 3 가지는?

관리자 0 6,306 2017.11.12 06:16
출 5:1-9, 내 백성을 내어보내라Let my people go/ 출애굽의 3대목적

  질문: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을 떠나야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3 가지)

  80년간의 연단 기간을 거친 모세는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세움을 받았다. 이제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한 모세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다. 모세와 아론은 마침내 바로 왕 앞에 서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담대히 말했다. 당시 사람들은 바로를 신으로 생각했던 터라 새로운 신의 이름을 소개하는 모세의 출현은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려는 모세는 신으로 일컬어지는 바로왕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 즉 사흘길 쯤 광야에 가서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하라고 요청했다(1-9). 하지만 모세의 이러한 접근은 바로의 맹렬한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더 큰 부역의 짐이 지워졌다. 전형적인 독재군주의 전횡과 압박, 그리고 아집이 애굽 왕 바로에게서 나타났다(10-14). 이에 백성들은 오히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불신하게 되었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이러한 반응들은 모세를 당황시켰다(15-23).

내 백성을 보내라. Let my people go. 출애굽의 목적 3 가지이 있다. 희생 제사, 섬김(예배)과 절기(잔치)이다.

1. 제사(희생)을 드리기 위하여.
3:18,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8:27,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신대로 하려 하나이다.
화목.  8:8, 25-29. 애굽에서 준비된 양.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희생/ 제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그 절기(잔치)가 있기 전에 우리에게는 희생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예배에는 희생이 있어야 하고, 그 희생을 드리기 위해서는 사흘길쯤 애굽을 벗어나는 탈출이 필요하다. 예수님이 이루신 십자가 3일의 희생은 우리의 과거로부터의 일탈과 탈출을 위한 것이다. 애굽에서 살아가는 그대로의 상태로는 희생도, 절기도 없다. 다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총을 통하여 성도의 잔치는 시작된다. 그러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개하면 즉각 천국이 임한다(마4:17). 
  우리의 구원에는 주님의 희생이 있고 우리의 잔치가 있음을 기억하자. 예배의 중요한 요소는 희생과 잔치이다. 피의 제사가 있고, 공급하시는 은총과 축복으로 인한 감격의 잔치가 있음을 감사하자.
  묵상/ 우리의 예배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을 필요로 하는 회개가 있는 지, 죄사함받고 주신 바 은혜에 기뻐 노래하는 찬양과 간증이 있는 지 점검해보자.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론이 아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예배의 요소이다. 죄인이지만 주 앞에 자녀로 설 수 있는 근거는 상한 마음으로 드리는 회개기도이다.
십자가 밑에 들어가 회개,  피를 적용하라. 유월절 제사/희생 드리라. 어린양.
다윗의 위대함은 회개와 예배에 있다. 회개와 죄사함, 감격의 예배. 
*시 51:1,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10,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희생 제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나를 위한 대속의 제물이 있는가?

2. 섬김(봉사, 예배), 사흘길의 구별됨.

4:22-23. 장자로 부르심.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높이고 섬기기 위해 특별히 불렀다. 이스라엘을 영적인 장자로 부르셨다. 이스라엘에서 장자는 3가지 특권이 있다. 왕권, 제사장권, 두 배의 상속권이다.
3:12, 모세 콜링시.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라.’
4: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보내주어 나를 섬기리라.
7:16,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기리라. 첫째 재앙, 피.
8:1,    둘째 재앙, 개구리
8:20, 넷째 재앙, 파리.
9:1, 다섯째 재앙, 돌림병,
9:13, 일곱째 재앙. 우박.
10:3, 여덟째 재앙. 메뚜기.

3. 절기 - 잔치, 누림을 위해. 5:1, 10:9(광야에서 나의 기업).

5: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10:9, 모세가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
  ‘절기를 지키다’는 ‘원을 돌다’라는 뜻의 하가그에서 유래했다. 이는 일종의 종교행위를 반영한 것으로, 당시 각종 절기 등에는 둥글게 원을 돌며 노래하며 춤추는 등 축제요 잔치였음을 보여준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예배)를 드리지 못했다. 그런데 광야에 나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면 백성들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 된다. 큰 축제요 잔치가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성령이 주시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실제로 얼마나 그들이 출애굽하여 시내산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무서운 불과 연기 가운데 그들에게 강림하셨다. 이스라엘의 마음 속에는 놀라운 두려움과 동시에 기쁨이 충만하였다. 그들에게 놀라운 축복이었다.
북한에서 2년 7개월간 구속되어 있던 캐나다 시민의 임현수목사는 1년간 성경과 찬송가 없이 주일이면 혼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1년 후에는 사모님과 후임 목사님이 보내준 성경 찬송으로 예배를 드렸다. 하나님 은혜에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여 눈물을 흘리며 예배드렸는 데, 무려 13시간을 예배드렸다고 한다.
  성도에게 가장 큰 기쁨은 언제인가? 바로 예배드릴 때이다. 함께 예배드릴 때이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으나,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하나님께 찬양드리고, 기도드리며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드릴 때 주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다. 그 안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고, 위로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가운데 기쁨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하나의 형식에 그치고 지겹고 답답하게 느낀다면 가장 귀중한 것을 빼앗긴 것이다. 이는 슬픈 일이고 가슴아픈 일이다.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가운데 축제와 잔치같은 기쁨을 받는 것이다.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이며, 내 안에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생기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분명한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예배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의 구원은 단순히 형벌이나 심판으로부터의 자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은 절기를 포함한 것이엇다. 잔치가 없는 구원은 아직 온전하지 못하다. 눅 15장의 세 비유는 구원사건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준다. 잃은 양 비유에서나,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에서나, 탕자 비유에서 공히 회복, 구원 이후에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잔치가 있었다. 혼자 즐기는 개인적인 은혜의 기쁨이 아닌 공동체가 함께 즐기는 잔치였음을 주지해야 한다.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베풀라고 말씀하셨다. 출 12장의 유월절 그밤에도 집 안에서는 양고기를 먹으며 출발을 위한 마지막 잔치가 있었다. 죄인들의 형벌이나 심판의 해결이 전부가 아니다. 죄사함과 거룩한 삶으로의 성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에 하나님을 만난 기쁨이 있고, 잔치가 있어야 한다. 축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버지의 갈망이다.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 친밀함으로 여호와를 누릴 수 있다. 기업이다. 절기를 보낼 수 있다. 하나님의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의 기업됨을 누린다. 그래서 모세는 바로왕에게 호소한다.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남녀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습니다.”
  드디어 모세와 아론, 그리고 바로의 협상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대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으로 부르도록 지시받았다. 그러나 바로를 상대할 때 그들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부른다.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의 하나님으로 부르는 그들은 이미 한 민족을 형성한 것이다. 이 위대한 이름으로 모세와 아론은 그들의 메시지를 전한다. ‘네 백성을 보내라’(1).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2). 바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희가 말하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고 존중하지도 않으며 따라서 두렵지도 않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와 경멸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의 원인이다. “내가 왜 그 알지도 못하는 신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라고 하며 모세와 아론의 요구를 거절한다.

  바로가 여전히 살기등등하여 우리를 향해 적의의 이를 갈고 있음을 두려워하지 말자.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다고 바로가 얼른 나가라고 보내주지는 않는다. 신앙을 결단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기로 결심했어도 여전히 사탄은 나를 붙잡고 노예로 부리고 싶어함을 기억하자.
(목성연 교재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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