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막 5:21-43 묵상 자료

관리자 0 233 06.13 14:28
막 5:21-43(두 믿음에 기적으로 반응하신 예수님) 묵상 자료

  본문은 예수님이 행하신 두 여인의 기적 이야기이다. 이는 샌드위치 기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A: 21-24(야이로의 딸 이야기), B: 25-34(혈루병 여인 이야기), A’: 35-43(야이로의 딸 이야기). 두 치유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모든 병을 치료하실 수 있는 만병의 의사, 죽음까지도 정복하시는 부활과 생명의 주이심을 선포하셨다.

1. 21-24, 야이로의 딸 이야기(A)

    가버나움의 회당장(아르키시나고고스) 중 하나인 야이로가 예수님께 나와 죽어가는 사랑하는 딸을 살려주시길 간곡히 구하였다. 그는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자신의 열두 살 딸이 죽게 되었으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어,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해달라고 구했다. 이에 예수님이 그와 함께 가시는데,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고 밀었다.
*회당 : 당시 회당에는 보통 10명의 관리인이 있었고, 그 중 3인은 회당장을 맡았다. 그는 재판을 포함한 회당의 관리와 예배 책임 등 주요 임무를 수행했다. 임기는 보통 1년이고 재선이 가능했다. 야이로는 세 회당장 중의 한 사람이었다. 당시 회당장은 존경받는 위치였지만, 그는 예수님이 최고의 치료자이심을 믿고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 야이로(Jairus, 야에이로스): 아마 히브리어 야이르(그가 빛,오르을 비출 것이다)에서 온 이름으로, 므낫세의 아들 야일은 요단 동편 바산지역을 정복했던 지도자(민32:41). 또 사사 중 하나(삿10:3), 모르드개의 아버지의 이름이기도 하다.
* (발 아래) 엎드리다(핍토) : 회당장이 ‘급격히 땅에 엎드렸다’는 것은 어린 딸이 중병에 걸려 죽어가는 상황으로 인해 그의 영혼이 무너져내렸음을 암시한다. ‘발 아래로 들어 갔다’는 것은 예수님의 ‘통치 아래 들어갔다’, 예수님을 ‘존경하고 경배하는’ 의미도 포함된다. 병든 딸이 치료받기 위해 지위나 위엄도 잊고, 세상 지위높은 사람이 당시 세상적으로 지위 없는 예수께 이렇게 한 것이다.
* (그 위에 손을) 얹으사(에피티쎄미) : 회당장은 예수님의 손(복수)을 바라보았다. 이는 간절함을 의미한다(시123:2). 그는 예수님이 반드시 손을 얹어주셔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는 주님의 손이 치유의 매개체라고 믿었던 것이다. 손이 치유하는 것은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이 치료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소녀가 죽은 후 가셔서 죽은 소녀의 손을 잡고 말씀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셨다.
*구원을 받아(소조의 과거 수동태, be saved) 살게 하소서(자오의 과거 능동태) : 단순히 고쳐달라기 보다 구원받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2. 25-34, 혈루증 여인 이야기(B)

    이제 샌드위치의 속 부분(삽입)이다. 12년간 혈루증 앓던 여자가 예수님 옷에 손을 대자 치유받는다. 믿음이 그녀를 구한 것이다. 
*열두 해: 소녀의 나이도 열두 살이다. 12는 완전수(3X4)로서 꽤 오랜 세월을 의미한다. 아직도 12제자는 예수님의 뜻을 잘 모른다. 그러나 열둘과 관련된 두 여인의 회복은 이스라엘 새로운 12지파, 새로운 이스라엘이 회복될 모습을 보여준다.
*이 여인은 12년간 혈루증(루세이 하이마토스, 피가 계속 흐르는 질병, 유출병, 하혈병)을 앓고 있는 여인이다. 레 15장 참조.
25-26절, 자신의 병 치유를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었다. 하지만 가산만 탕진했지 호전된 것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 그녀는 부정하고 불결한 여인이어, 만지는 것도 부정해진다. 회당에 가서 예배드릴 수도 없다. 남을 만날 수도 없다. 당시 이 병을 앓으면, 남편에게 이혼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는 몸도 정신도 완전히 망가진 절망적인 4중고 인생이다(육체적 아픔, 종교적 불결, 경제적 궁핍, 사회적 고립). *부정한 이 여인은 남을 부정하게 만들지만, 정결하고 거룩하신 예수님은 부정하게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정하고 불결한 여인도 정하게 치유하신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를 ‘단번에 완전히 영원히’ 거룩하게 하신다! 죽은 소녀(부정한 시체)의 손도 잡고 일으켜 온전히 소생시키셨다. 
27-29절, 혈루증의 치유: 하지만 그녀는 예수님에 관한 좋은 소식을 들었다. ‘내가 그의 옷만 만져도(합토, 힘을 다해 꽉 움켜 잡다, 세게 당기다) 구원을 받을(소조의 미래 수동 태)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28, 구원의 갈망과 확신), 무리 가운데 섞여 뒤에서 예수님의 옷(히마타우)을 만졌다(세게 당겼다, 여인의 간절함). 예수님이 옷단 술을 단 옷을 입었다고 보면, 외투인 겉옷의 네 귀퉁이에 달린 옷단 술(찌찌트, tassels on garments, 민15:38-39 참조)을 만졌다. 당시 랍비 문헌에 ‘온전하지 않은 자가 온전한 자의 옷단술에 손을 대면 온전해진다’는 말이 나온다.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많은 병자가 그 옷가에 손을 대는 자마다 모두 나았다(6:56). 물론 이는 옷 자체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치유 능력에 의한 것이다. 그 옷자락을 만지자마자 혈루 근원이 곧 말랐다(엑세란쎄, 수동태, 즉 예수님의 능력에 의해 마르게 된 것). 여인은 ‘병이 나은 줄 몸으로 깨달았다(느꼈다).
30-31절, 예수님의 반응 : 예수님은 신적 능력이 자신에게서 나간 줄을 바로 아셨다. 그 능력이 여인에게 흘러들어가 혈루의 근원을 막은 것이다. 주님은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의 옷에 손을 댓는지 아셨다. 그런데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물으셨다. 왜? 여인에게 간증할 기회를 주기기 위함이며 믿음의 고백을 원하신 것이다.   
32-34절, 여인을 향한 구원 선포 : 혈루증을 치유받은 여인은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 엎드려 ’모든 사실(진실, 알레쎄이아)을 말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녀를 ‘딸아’(쒸가테 르, 소녀나 여인을 친밀하게 부르는 애칭, 감동이다!)라고 부르시고, ‘네 믿음(피스티스, 신실함/담대한 확신)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선언하셨다. 그녀는 믿음으로 구원(치유)을 받았다(소조의 완료태, 온전히 구원받은 상태). 예수님은 여인에게 두 가지를 명하셨다. 1) 병에서 치유받았으니 ‘평안히 가라’. 2)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하라(병으로부터 건강하게 있어라). 믿음- 치유-평안!

3. 35-43, 야이로의 딸 이야기(A‘)

  회당장의 딸이 죽었다고 통곡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그 아이가 잔다고 하신다. 그리고 소녀에게 일어나라 하시니 소녀가 일어나 걸으므로 사람들이 크게 놀란다.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다. 소녀는 완전한 치유를 받은 것이다.
35-36절, 야이로의 딸의 죽음 : 회당장 집 사람들이 와서 그에게 ’딸이 죽었으니 예수님을 더 괴롭히지 말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이 말을 ’곁에서 듣고‘(파라큐오, 거부하다, 배척하다, 무시하다의 뜻=공역, 우리말성경 등)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신다. 두 동사는 모두 현재형이어서 계속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해서 오직 믿으라(피스튜오)는 의미이다. 어찌할 바를 모를 때 할 수 있는 최선은 오직 믿는 것이다. 곧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아온 여인이 믿음으로 치유받은 것처럼 너의 딸도 너의 믿음으로 치유될 것을 예고하신 것이다.
37-40절, 세 제자와 함께 야이로의 집에 들어감 : 불신에는 기적이 없다. 주님은 세 제자만 회당장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셨다(37).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고 말씀하신다(39). *38절-떠들고 울고 심히 통곡하고 있다 : 당시 장례식에 피리 부는 사람들(마9:23)과 우는 여자를 고용했다.
 ‘자다’(카쓔데이)는 ‘죽음’을 뜻하기도 하지만(살전 4:15,5:10), 여기서는 실제로 ‘잠을 자고 있는 것과 같음’을 강조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계속해서 비웃었다(카타겔라오의 미완료). 주님은 그들을 내보내셨다(에크발로의 분사).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예수님 계신 곳에서 결국 내쫓기게 된다. 
41-43절,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 예수님이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쿰’(아람어, 소녀야 일어나라, 당시 부모가 늦잠 자는 아이 깨울 때 사용되던 말?) 하시니, 소녀가 즉시 일어나서(아니스테미, 부활 의미) 걸었다. 여기서도 접촉(합토)을 통해 예수님의 신적 능력이 아이에게 흘러들어갔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온 여인처럼, 열두살 소녀도 치유를 받았다. 그리고 치유는 접촉 순간에 일어났다(겉옷을 만지자마자, 손을 잡고 일으키자 곧). 사람들은 곧 크게 놀라고 놀랐다(동일 의미의 단어 반복, 황홀경,엑스타시에 빠질 정도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엄청 놀랐다).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는 죽기 전부터 먹지 못했을 소녀를 돌보는 자상하신 배려인 동시에 소녀가 완전히 소생했음(눅 8:58은 ‘그 영이 돌아왔음’을 말씀한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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