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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3:1-19 묵상 자료

관리자 0 2,836 2021.02.14 15:19
막 3:1-19 묵상 자료

3:1-6, 안식일에 손마른 자를 치료하시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모인 사람 중 한 손마른 자를 고치셨다. 거기에 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환자를 고치시면 고발하려고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님은 이를 신경쓰지 않고 그 환자를 고치신다. 주님은 악한 일보다 선한 일을, 죽이는 일보다 살리는 일을 하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나가서 헤롯당과 함께 주님을 죽일 방법을 의논한다. 
*1절, 손마른(엑세람메넨) : ‘크세라이노’의 완료수동태 분사형으로 선천적이 아닌 후천 적으로,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손마른 자임을 가리킨다.
*2절, ‘주시하다’(파라테레오) : 파라(곁에, 가까이에) + 테레오(감시하다 지키다)의 합성어, ‘누군가를 궁지에 빠뜨리려고 주도면밀하게 살피다’.
 바리새인들은 이런 목적으로 살폈으나, 주님은 선한 일을 행하며 생명을 살리기 위해 환자를 살폈다. 그리하여 그를 낫게 해주셨다.
 적용: 나는 어떤 자세로 어떤 사람의 일을 주시하고 있는가? 이런 자세로 남을 주시하지 않고 남의 생명을 살리는 선한 일을 위해 주시하게 하소서.
*3절, ‘한가운데 서라’ : 늘 바깥에서 머물던 그를 사람들 가운데로 부르셨다. 아웃사 이더로 도는 이를 인사이더로 부르셨다.
*5절, ‘노하심’(‘올게스’) : 마음에 자리잡아 담겨 있는 분노, 즉 꼭 필요한 때만 그 모습이 나타나는 분노이다.
*5절, ‘네 손을 내밀라’(엑테이노) : ‘엑테이노’(뻗다)는 평소 뻗을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뛰어넘어 힘껏 손을 뻗는 것을 가리킨다. 이 예수님의 명령은 시들어가고 말라가던 영혼에게 능력을 회복하라는 생명의 명령이다.
*6절, ‘예수를 죽일까’(아폴뤼미) : 부정과거 가정법이다. 죽이다, 멸하다, 허물다의 뜻으로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생명을 구하시려는 예수님의 생명을 허물어버릴 궁리를 했던 것이다. 마귀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하나, 예수님은 생명을 얻고 풍성히 얻게 하신다.

3:7-12 :
예수께서 하신 큰 일을 듣고 유대뿐 아니라 인근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나온다. 귀신들도 예수님을 보기만하면 그분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짖는다.
*7절, ‘물러가시니’(아나코레센) : ‘아나코레오’(늦추다, 떠나다, 다시 되돌아가다)의 부정 과거형이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피해 후퇴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명을 감당하시고자 갈릴리로 되돌아가심을 의미한다.
*8절, ‘그가 하신(에포이에이) 큰 일을 듣고‘ : ’포이에오‘의 미완료형이다. 무리가 귀 기울인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주님이 줄곧 행하신 이적이었음을 뜻한다. 말씀에 근거한 신앙이어야지 기적만 찾는 신앙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나는 육신의 문제 해결을 위해 기적을 구하고 있지 않는가? 성도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는 않는가? 오직 말씀 중심의 신앙을 심어주고 있는가?

3:13-19,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세우신다. 자신과 함께 하며 전도도 하고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얻게 하시기 위함이다. 즉 하나님나라를 세우시려는 주님의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을 부르신 것이다.

*나는 제자로서 주님과 늘 동행하고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전도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있는가? 제자로서 바른 자질과 태도를 가지고 사역하고 있는가?
*13절, ’나아온지라‘(아펠쏜) : ’아페르코마이(즉시 나아오다)‘의 부정과거형이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부르시는 분을 향해 즉시 나아오는 것을 보여준다. 
*14절, ’열둘을 세우셨으니‘(에포이에센) : ’포이에오‘(만들다)의 부정과거형이다. ’창조하 다‘(창1:1, LXX)와 같은 뜻이다. 주님이 열둘을 세우심은 교회를 ’창조하시는‘ 과정이며 영혼을 재창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17절, 세베대의 두 아들, ’보아너게‘(우뢰의 아들) : 요한과 야고보의 별명인 데, 예수님과 제자들을 환영하지 않는 사마리아인들을 하늘의 불로 멸하려 했던 사건(눅 9:54)이나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혀달라고 했던 사건(막10:35-37) 등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그들의 과격하고 성급한 성격 때문에 주어진 별명이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의 중요한 사역에 동행했고(막5:37; 9:2-10, 14:33), 야고보는 사도 중 최초의 순교자로서, 요한은 최후까지 사랑의 사도로서 사역을 훌륭히 감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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