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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Rom 1:13-17 복음의 불을 다시 지피라

관리자 0 1,423 2021.01.17 16:27
롬Rom 1:13-17  복음의 불을 다시 지피라 

  필리핀 마닐라 북쪽에 상 페르난도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코우크를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콜라에다 밥을 말아먹습니다. 우리가 라면 국에다 밥을 말아먹듯이 말입니다. 어떻게 미제 코우크가 이런 영향력을 보일까요? 한 사람의 무서운 열정 때문입니다. 세계 곳곳에 다 들어가 있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코카 콜라입니다. 미국 외교관도 감히 들어가지 못하는 곳에도 진입했습니다. 공산권이든 원수의 나라든 구별 없이 다 들어갔습니다. 코카콜라가 왜 이렇게 크게 성장했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이 회사의 사장의 열정 때문입니다. 그는 코웈 판매를 위해 목숨을 건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정열과 모든 노력을 코웈 판매를 위하여 쏟아 부었습니다. 그가 이 일에 얼마나 전념했든지, 누구를 만나든 무슨 일을 하든 항상 코웈 생각만 하고 코웈만 말하고 다녔습니다. 심지어 그는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혈관 속에는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코웈이 흐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는 코웈에 미친 사람입니다. 그의 열정과 헌신이 어떤 회사도 넘보지 못하는 코웈의 아성을 쌓았습니다. 한 가지 목적에 열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큰일을 해내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 그는 예수님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입니다. 복음에 목숨을 건 사람입니다.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예수님과 복음에 미친 사람입니다. 고후 5: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무슨 말입니까? 복음되신 예수님을 전하는 일에 미쳤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오직 복음만을 위해서 사는 존재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에서 바울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달려가 복음을 전하고 싶어 합니다. 여기에 참으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당시 로마 교회는 복음을 이미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바울이 로마교회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간절한 소원을 말합니까? 바울은 목회자입니다. 그 교회를 영적으로 진단했을 것입니다. 복음을 받은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믿음의 순수성을 잃고 열정이 식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롬 13:13 이하는 그들의 상황을 잘 말씀합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얼마나 무서운 충고입니까? 예수 믿지만 잘못 믿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복음의 힘을 상실한 그들에게 다시 복음의 불을 지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늘 새롭게 도전을 받지 않으면 쉽게 무디어집니다. 시들시들하다가 말라버립니다. 오래 된 교회일수록, 오래된 교인일수록 복음의 능력을 잃어가는 수가 많습니다. 예수의 사랑이 식어 버렸습니다. 십자가의 피가 말라버렸습니다. 외관상 화려해 보이지만, 복음의 능력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무디 목사님이 이런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의 열정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사는 그리스도인은 불과 5%밖에 되지 않는다. 95%의 교인들은 열정이 다 식어버렸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합니다.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교회 밖에 보다 사실 교회 안에 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다시 한 번 새로워져야 할 사람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녹아져야 할 사람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자신이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할 사람들이 바로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복음을 다시 듣고 무엇을 해야 할까요?  복음을 다시 들으면 어떤 결과가 주어질까요?

1. 잃어버린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라고 하십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와 허물로 죽었던 나를 살리셨습니다. 바울은 고전 2:2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지옥의 삶을 살다가 천국의 삶으로 바뀌어졌습니다. 불안과 근심과 염려가 예수님의 능력으로 극복됩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감격과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감격입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을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습니까? 가슴 속에 밀물처럼 밀려오는 환희, 병든 영혼이 소생하고 하늘에서 성령의 단비가 쏟아지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혹시 이 경험이 없으신 분은 한 번 금식하시면서 주님과의 생생한 만남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조지 윗필드라는 영국의 신학자요 목회자가 있습니다. 그분이 20 대 초반에 복음을 다시 듣고 구원의 감격을 체험했습니다. “오! 죄의 무게가 사라지고, 수심에 잠긴 내 영혼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식이 자리잡게 되었을 때 내 영혼이 얼마나 큰 기쁨으로 가득 찼던가!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었고 영광으로 가득한 기쁨이었다. 그날은 영원히 기억에 남을 날이었음에 분명하다. 내 기쁨은 마치 홍수처럼 강둑을 넘어 범람했다.” 이것이 구원의 감격입니다. 이런 경험을 하신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꼭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어도 괜찮습니다. 문제는 구원받은 감격, 즉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지금 있느냐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구원의 감격을 지속하기가 힘듭니다. 십중팔구는 그 감격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풍선처럼 말입니다. 바람이 가득 든 풍선이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바람이 빠집니다. 나중에는 보잘 것 없는 풍선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구원의 감격을 항상 유지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막히게 복된 인생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감격을 상실하게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1) 복음을 새롭게 깨닫지 못하면 모릅니다. 2) 오래가면 식기 쉽습니다. 3) 죄를 범하든지 영적으로 병들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복음을 진지하게 반복해서 듣고 받아들이면 다시 회복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묵상하고 에수님의 은혜 안에 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항상 가까이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고, 십자가와 죄사함과 영생,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죽었던 영혼을 다시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잃었던 복음의 감격을 회복합니다. 에베소교회처럼 잃었던 첫 사랑을 회복합니다. 16절은 말씀합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멸망의 길로 가는 나그네입니다. 지옥갈 인생들입니다. 요 3:36, “아들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주님은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아무리 잘났어도, 뛰어난 지식이 있어도, 부자라도 소용없다. 문화인이라도 소용없다. 복음, 예수님이 없으면 너희는 다 죽은 자들이다. 지옥의 백성이 될 것이다.”
 * 모 권사님, 이사해서 가까운 교회에 등록했다. 새가족 반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해서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새가족반 공부를 통해 복음을 다시 들었다. 눈에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수료시 간증했다,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서,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큰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식어버린 사람임을 깨달았습니다. 영적으로 다시 충만한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 교회가 복음을 다시 들어야 했듯이 우리도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합니다. 다시 태어나고 다시 감격하고 다시 잃어버린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보다 더 좋은 것 없고 구원받은 것보다 더 기쁜 것은 없다.’ 이 기쁨, 이 감격이 넘치시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2. 꺼져가는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라고 하십니다.

16, 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꺼져가는 복음의 능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로마에 편지를 보냅니다. 그는 본래 복음을 부끄러워하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수치요 창피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예수님이 자신을 살렸습니다. 십자가가 영광이요 축복임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구원의 능력을 체험하면 우리는 변화됩니다. 불안해하던 사람이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고독해하던 사람이 주님과 동행함으로 외로움을 이기게 됩니다. 불평과 불만, 미움과 원한에 사무쳐 있던 사람을 모두 용서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기 때문에 세상에서 여러 가지 마음 상하는 일들이 있어도 그것으로 병이 든다든지 거꾸러지는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영혼의 구원이 정신적인 건강을 가져옵니다. 나아가 우리의 육체의 고통을 치료하기까지 합니다. 가정도 회복되고 경제도 덤으로 점점 창대해집니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복음을 다시 전하여 불붙이고 싶어 했던 능력은 무엇입니까? 복음은 곧 능력입니다.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행 3:6에 베드로가 못걷게된이를 향하여 큰 소리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이 말씀을 듣고 못걷게된이는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귀신이 벌벌 떱니다. 마귀가 쫓겨 갑니다. 또 복음을 믿는 자에게 성령의 권능이 주어집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복음의 능력은 오직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강력한 복음의 능력을 받는 데 돈이 필요 없습니다. 지식이 요하지 않습니다. 세상 명예나 얼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전혀 복잡하지 않습니다. 유일한 조건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기만 하면 예수님의 능력을 소유하며 살 수 있습니다. 이 축복을 받고 사시기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음의 열매를 맺으라고 하십니다.

13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여기서 열매는 전도의 열매를 말합니다. 로마 교회가 복음을 다시 듣고 구원의 감격과 하나님의 능력을 회복합니다. 그 순간 전도 운동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침내 전도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만 예수 믿고 천당오기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바란다고 말씀합니다(딤전 2:4). 하나님은 아무리 악한 자라도 멸망받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 먼저 복음을 다시 듣고 구원의 감격, 복음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다윗이 간구했던 것처럼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해야 합니다(시 51:12). 그리고 전도하는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초등학생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너무나 예수를 잘 믿습니다. 은혜를 크게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빠는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 믿고 구원의 감격을 가슴에 벅차게 느꼈습니다. “이 예수님을 나만 믿어서는 안돼. 아빠도 믿어야 되고 엄마도 믿어야 돼!” 그는 견딜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혀 전도의 열정을 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아버지를 보고 날마다 예수 믿자고 졸라댔습니다. 그 아빠는 단지 그 아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귀여웠습니다. “그래그래 너부터 먼저 믿어. 틈이 나는 대로 믿을게. 그래 너무 나를 성가시게 하면 내가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니?” 이렇게 해서 적당히 넘어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슴 아프게도 교통사고가 나서 그 아이가 죽고 말았습니다. 부모의 슬픔을 무엇으로도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죽은 아들이 사용하던 방에 들어가 그 아이의 유품을 하나하나 만져보았습니다. 옷도 만져 보고 읽던 책도 만져 보고 그러다가 노트 한권을 발견했습니다. 일기장이었어요. 그 일기장을 펴 본 아빠는 기절할 정도로 놀랐습니다. 죽기 며칠 전에 쓴 일기 내용인데 이런 기도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빠 꼭 예수 믿게 해 주세요. 하나님, 아빠가 예수 믿기 위해서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죽기를 원합니다. 내가 죽어서라도 아빠를 예수 믿게 해 주세요.” 그가 이 글을 읽으며 받은 충격과 후회와 감동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인가? 생명 내어 놓고 내가 믿어야 할 일이었던가?” 드디어 그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생명과 자신의 영혼 구원을 바꾼 셈이 됩니다. 그분이 누군지 아십니까?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도처에서 수백만의 젊은이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데 큰 몫을 담당했던 대학생 선교회(CCC)의 국제본부 부총재였습니다.

구원의 감격,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면 하나님께 열매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가슴속에서부터 치솟아 올라 견디지 못합니다. 안 믿는 식구 보면 못 견딥니다. 안 믿는 이웃을 보아도 마음 아파합니다. 우리 모두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세요. “나는 복음의 능력이 식지 않았는가? 왜 그럴까? 내가 복음을 들은 지가 너무 오래 되었어. 다 아는 것이요 귀가 아프게 들은 것 같지만 실은 예수의 이름, 예수의 십자가가 가진 복음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었어. 내가 마음을 열고 복음을 귀담아 들으며 감격한 일이 지난 수년 동안 한 번도 없었어. 이것이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전도의 열매를 주님께 드리지 못하는 부끄러운 생활을 하게 만든 원인이었어. 그래 복음을 다시 듣자. 그리고 그 능력을 회복하자.”

성도 여러분, 이런 결심으로 주님 앞에 서시기 바랍니다. 이제 주님께서 여러분을 받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일어나 빛을 발하는 주의 백성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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