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예배/새벽예배

목요일예배-마23:1-12

관리자 0 1,611 2020.05.25 13:03
목요일예배-마23:1-12

마 23:1-12, 왕-섬기는 지도자 예수

1. 언행이 일치한 삶, 1-4절,
1.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자리, 즉 모세의 율법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던 자들이다. 그들은 율법을 바르게 가르치며 백성의 본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말씀에 능통한 사람들이었으나, 실생활에서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 본이 되지 못하고 말만 앞세우고 오히려 율법을 백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우리도 매일 성경을 읽으며 머리는 커지나, 팔과 다리는 어린 아이와 같은 적용없는 삶을 살지는 않는가?
  기독교의 최대 위기는 하나님이 주신 영적 복을 세속적인 것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초대교회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했다. 그들은 돈, 권력, 집이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그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그런데 중세시대 교회는 금으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대리석으로 교회를 꾸몄다. 돈이 많았다. 그래서 아퀴나스는 말했다. “초대교회는 은과 금은 없었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금이 생겼고 사람도 많아졌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는 능력은 잃어버렸다.” 이것이 오늘 교회와 성도의 비극이다.  교회가 돈과 좋은 건물도 있으나 영성과 능력을 잃지 않았나?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이름, 말씀의 능력을 잃고 말았다. 오늘 나는 어떠한가? 말씀을 읽고 들으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내 영과 마음이 진정 하나님으로 가득차 있는가?
3절, 말과 행위가 일치하는가? 바리새인들은 말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말을 행하고 지키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말씀대로 하시는 분이시다. 일어나 걸으라 하면 일어나 걸었다. 귀신아 나가라 하면 귀신이 나갔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은 말과 행위가 일치하는 사람이다. 말은 적게 하고 행동은 크게 하려고 한다. 묵묵히 기도하며 기쁨으로 행하며 살려고 힘쓴다. 나의 예배와 삶은 일치하고 있는가?

2.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눈을 더 의식하며 살라.
5절.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더 의식하며 살았다. 자신들의 경건을 과시할 생각으로 기도 때, 이마 또는 왼쪽 팔에 붙였던 경문(말씀 기록해 넣은 상자)을 더 크게 만들어 잘 보이게 했다. 또 겉옷의 네 귀에 장식으로 달았던 옷술(tassel)을 크게 하여 사람들의 눈에 잘 띄게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정작 있어야 할 경건의 능력은 갖추지 못했다.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드리기 보다,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한 기도를 드린다. 헌금할 때도, 가난한 사람을 도울 때도 사람들 앞에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한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마 6:  ). 이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만큼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의 시선, 말 입장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라. 마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이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자.
바리새인들은 6 가지 실수를 한다. 1) 잘 보이려고 경문을 넓게 했다. 2) 옷술을 크게 했다. 3) 잔치 상석에 앉았다. 4) 회당 상좌에 앉았다. 5) 시장에서 존경을 받으려 했다. 6) 랍비라는 말을 듣기를 좋아했다.

3. 지난친 명예욕과 교만을 버리라. 6-7절, 6.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들은 항상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고 높임을 받고자 했다. 잔치의 윗자리나 회당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퉜고, 랍비(선생)라 칭함받기를 좋아했다. 시장 같은 곳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했다. 이는 교만의 모습이다.

4. 자기를 낮추는 자가 높아진다, 12절, 12.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신다. 역설적 진리이다.
바리새인들의 교만과 외식을 본받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서로 섬길 것을 요구하셨다(8-11). 8.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랍비(존경받는 자, 너희는 한 형제라), 아버지(생명의 근원의 뜻, 세상 것을 근원 삼지 말라, 절대화하지 말라), 지도자(안내자의 뜻, 참 지도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수령 아버지, 지도자 동지’ 잘못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시나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시기까지 낮아지시고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섬김의 본을 친히 보여주셨다(빌 2:6-8).

겸손/성 프란시스의 보좌
성 프란시스의 제자가 환상 중에 하늘 나라에 갔다. 비어 있는 어떤 높고 찬란한 보좌를 보고 누구의 보좌인지 궁금해 천사들에게 물었다. 그 주인은 겸손한 성 프란시스의 것이란다. 깨어난 제자는 질투심에 스승을 시험해 보았다.  “프란시스 선생님,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나야, 뭐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이지.” “선생님, 그건 위선이고 거짓말입니다. 사람들은 선생님을 성자라고 불러요. 세상에는 강도, 살인자 등 나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아니야. 그건 자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야. 하나님이 나에게 정말로 많은 것을 은혜로 주셨거든. 그러나 만약 남들도 그 은혜를 깨닫기만 하면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 되었을거야.” 결국 제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다.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어거스틴에게 제자가 질문, ‘누가 세상에서 제일 큰 사람입니까?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로 겸손한 자. 우리에게 참 겸손이 있나? 겸손은 뭘까?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 나를 죽이는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가능하다. 돈, 지식, 경험으로 교만하지 말라. 오히려 겸손의 도구로 삼으라. 너를 낮추라 섬기는 도구로 사용하라. 하나님이 주신 돈, 지식, 경험, 건강으로 남을 섬기라. 주께서 높이실 것이다. 아멘.
자기를 낮추는 자가 겸손한 성 프란시스처럼, 저 천국에서 높고 찬란한 보좌를 얻는 존귀한 자가 될 것이다. 겸손한 삶을 살아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길 축원한다.

교훈

1) 성도의 신앙은 말과 입으로 입증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삶으로 입증된다. 요일 3:18,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유대종교 지도자들은 그럴듯한 말을 다 늘어놓으면서 자신들이 하나님께 가장 헌신하고 율법에 충실한 것처럼 자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신앙은 행함이 없어, 하나님 보시기에 소용이 없는 죽은 믿음에 불과했다(약2:14-26).

2) 전도자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실천한 후, 남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말씀대로 살도록 권면해야 한다. 마 5:16, 세상의 소금, 빛으로 살아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해야 한다.

 3) 영적인 지도자는 세속적인 명예와 지위에 눈이 어두게 되면, 하나님 보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참 지도자는 겸손과 봉사를 강조하셨다(18:4, 20:26-27). 성도는 오래 믿을수록 스스로 겸비하여 남을 섬기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롬 12:16, 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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